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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명인 신관용과 그의 산조
가야금 명인 신관용과 그의 산조
  • 김은정
  • 승인 2018.09.06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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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조는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기악독주곡이다. ‘자유롭게 흩어져 있는 가락(散調)’을 들어 ‘허튼 가락’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허튼가락에 즉흥성을 더하는 시나위와는 또 다른 기악곡이다. 산조는 19세기말 가야금 명인 김창조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가야금산조가 기원이지만 이후 거문고나 대금, 해금, 아쟁, 피리 등 악기별 산조가 음악적 특징을 안고 만들어졌다.

형식적 틀은 느린 가락으로 시작해 빠른 가락으로 이어지지만 연주자에 따라 서로 다른 기교와 즉흥성으로 다양한 가락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산조는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에서 주로 연주되었지만 특히 전라도지역에서 빛을 낸 음악이다. 산조 명인 중 전라도 출신 연주자들이 많고 그들의 산조가 오늘의 무대에서 활발하게 연주되고 있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전북에도 시대를 잇는 산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다. 신관용류 산조는 김창조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영채 명인으로부터 이어진 가락이다. 신관용(1912~1961)은 김제 출신이다. 아버지는 피리와 장구 명인이었고 어머니는 무속인이었는데 열다섯 살에 가야금 명인 이영채를 만나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 그러나 스승의 가락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 가락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완성한 가락으로 자신만의 산조를 구축했다. ‘이영채류’가 아닌 ‘신관용류’ 가야금산조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그는 스물일곱 살에 결혼했으나 아편에 빠져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권번에서 가야금을 가르치거나 잔칫날 초대받아 연주하는 것으로 생계를 꾸렸다. 게다가 타고난 기량으로 복잡한 기교와 강한 즉흥성을 즐겼던 그로부터 가야금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제자도 제대로 두지 못했다.

다행히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는 강순영이 받아 가야금병창으로 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된 강정열에게 전해졌지만 그 전승의 맥은 여전히 불안하다. 신관용류 가야금산조가 갖는 의미와 가치에도 불구하고 무형문화재 지정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관용류 가야금산조를 문화재로 지정해 계승의 길을 열어야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군산대 최동현교수는 “그는 가난에 시달리고 아편으로 건강을 빼앗긴 삶에서도 가야금에 대한 열정만으로 한 시대를 살다 간 명인”이라며 “전승의 가치가 높은 그의 산조가 제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문화재 지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슬프디 슬프고, 간절했던 신관용류 산조가락을 이어내는 일, 서둘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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