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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미투에 불똥 맞은 군산 도시재생사업
고은 미투에 불똥 맞은 군산 도시재생사업
  • 남승현
  • 승인 2018.09.09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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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군산 시간여행거리 도시재생사업 아트월 제작
1억 7000만원 들여 거리 외벽에 고은 벽화 9개소 그려
최근 800만원 들여 단계적으로 없애거나 수정하는 식
시 “관광객 항의로”…시민단체 “차라리 다 없애라”

“‘미투(ME Too, 나도 말한다)’ 논란이 해결되기는 커녕 서로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관광객들이 고은 시인을 알리는 기념물을 꼭 봐야 합니까?”

지난 7일 군산시 월명동 시간여행거리에서 만난 모 카페 대표는 요즘 몇 달째 “고은 시인의 얼굴이 어디 갔느냐”는 관광객들의 문의를 많이 받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카페는 지난 2016년 외벽에 고은 시인의 얼굴과 시를 그려 넣었다. 하지만 얼마 전 고은 시인의 얼굴을 철거한 뒤 카페 이름이 적힌 간판을 내걸었다.

그는 “처음엔 가게 손님들이 좋아했는데, 올해 초 미투 사건이 터지면서 불만이 쏟아졌다”며 “시(詩)에 대한 거부감은 적었지만, 고은 시인에 대한 불만이 고조돼 결국 얼굴 그림만 내렸다”고 말했다.

고은 시인의 미투 여파가 애꿎은 군산시 도시재생 사업으로 번지고 있다.

군산시는 지난 2016년 10월 군산 시간여행거리에 근대 건축을 보전하고 상가 활성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1억 7000만 원 짜리 테마가로를 조성했다. 월명동 일원 상점 등 총 9곳에 고은 시인의 얼굴과 시를 알리기 위한 ‘아트 월(Art Wall)’이 설치됐다.

지난 2014년 첫 정부 주도의 도시재생 선도사업에 선정된 군산시는 총 200억 원을 투입한 효과로 관광객이 증가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최근 자체 예산 800만 원을 들여 아트 월을 없애는 공사를 단행했다. 미투 논란의 불씨를 끄기 위한 조치다.

고은 시인의 흔적이 담긴 월명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수치심까지 생겼다.

이 아파트 주민회장은 “군산시가 아파트 외벽에 고은 시와 배를 그렸는데, 건물에 배 그리면 떠내려간다는 속담에 주민들이 불만을 품고 있었다”면서 “고은 시인의 미투 사건으로 주민들이 얼굴도 못 들고 다녔는데, 결국 시에 항의해 모두 지웠다”고 말했다.

군산시는 아트 월을 지우거나 일부 수정하는 방법으로 미투 논란 타개에 나서고 있다. 한 상점 외벽에는 고은 시 ‘다릿집’이 새겨져 있었는데, 시를 남기고 ‘고은’이란 이름만 뺐다.

해당 상점 대표는 “미투 때문에 관광객들이 불만을 품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일반인들이 시만 보면 고은을 못 떠올릴 것 같아서 모두 없애지는 않았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관광객과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느라 이도 저도 아닌 도시재생의 결과가 도출됐다는 지적도 있다.

유재임 참여자치 군산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고은 시인의 이름만 빼거나 얼굴만 내리는 경우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면서 “애초의 취지를 살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도시재생을 가져온 것 같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군산도시재생센터 관계자는 “주민들 가운데는 고은 시인의 모습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의 입장도 있는데, 이같은 사회 현상을 도시재생에 모두 반영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 400만 원을 들여 조성한 고은 시인의 쉼터에 대해서도 시의 고민이 깊어졌다.

군산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미투로 논란이 되는데 ‘관광 명소에 관광객들이 고은 시인의 흔적이 웬 말이냐’고 항의하고 있다”면서 “좋은 취지로 군산이 고향인 고은 시인을 도시 재생에 접목했지만, 민원이 거세 수정이 불가피했다. 쉼터도 조만간 활용 방법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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