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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문화의 쇠퇴
기부문화의 쇠퇴
  • 기고
  • 승인 2018.09.1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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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규 학교법인 동암 이사장
양복규 학교법인 동암 이사장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12대에 걸쳐 300년 동안을 자선사업으로 일관해온 경주 최부잣집은 그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100리 안에서는 굶거나 얼어서 죽은 사람이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것이 가훈의 제 1조였다. 물론 민·형사상 책임은 없었지만, 부자로서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같은 미풍양속이 우리나라의 방방곡곡에 전파되었기에 농경사회에서 절대로 필요한 농지 소유자는 23%, 비소유자는 73%로 빈부의 불균형 시대에도 나누어 먹고 살아온 우리 민족이다.

관청에서도 환과고독(鰥寡孤獨)자는 물론 장애인 등 어려운 백성은 곳간을 열어 구제하였고 노동력이 있는 이에게는 거기에 맞는 일감을 주어서 벌어먹도록 하였다. 토정비결의 저자 이지함이 포천현감으로 있을 때에 추석이나 설 등 명절이 돌아올 때면 비농가로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짚신을 삼아서 100켤레씩 납품하면 그 대가를 주어서 명절을 즐겁게 보내게 했었다.

구례의 박부잣집에서도 떡치는 소리를 듣고 모여든 마을 아이들에게 만들던 떡을 조금씩 떼어 주다 보니 제사상에 올릴 떡이 없어서 빈 접시만 올렸다는 것이다.

부잣집에서 초상이 나면 시끌벅적하지만 가난한 집에서 초상이 나면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 적막강산이다. 그래도 마을에서 곡식, 간장, 땔감나무를 갖고 와서 깔끔하게 장례를 치러주는 것이 우리의 자선이다. 혼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가난할지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장가나 시집을 못간 사람이 없었다. 상부상조의 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이었다.

마을 어르신은 석양이면 뒷동산에 올라 연돌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은 없는지 살펴보아 식량을 보내주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예산 중에 1/3이 노인요양, 저출산, 어린이의 보육비 등 복지비로 쓰인다고 한다. 액면으로 보면 천문학적 숫자이지만 구원해야할 곳이 너무 많기에 당국의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간접구원체로 공동모금회, 자선냄비, 이웃돕기 등에서 구원의 힘을 보태고 있지만 그래도 수혜자 입장에서는 만족할 수가 없을 것이다. 복지비는 일단 설정되면 줄이거나 없앨 수가 없는 것 또한 크나큰 문제인 것이다.

상부상조의 기부문화가 많이 쇠퇴한 것 같다. 이웃집에서 초상이 났는지, 출산을 했는지조차도 모르고 지나기 일쑤이다. 이렇게 민심이 각박해진 것은 정서적으로 자애심이 발동할 수 없는 주변의 환경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200억 원의 장학금을 출연한 황필상씨에게 225억 원의 세금폭탄을 부과한 것이나, 장학금을 준다면서 행사장으로 초청했던바 대상 학생이 “쪽 팔린다”면서 “통장으로 입금해 달라”고 한다니 어느 누가 기부를 하고 싶겠는가? 그 뿐 아니다. 제도적으로도 정치권에만 일정액을 기부할 경우 100% 세제혜택이 주어질 뿐 노인시설, 장애인시설 등 어디에도 기부에 따른 세제혜택은 미미한 현실인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관세로 시행하는 복지비도 해마다 증액되어야겠지만 민간인들이 이웃 간에 서로 돕고 위로하며,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상부상조의 정신이야말로 물질보다도 훨씬 더 값진 기부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문화가 넓혀질수록 국민들의 정서도 따라서 더욱 순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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