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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1. 추석의 맛, 송편과 신도주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1. 추석의 맛, 송편과 신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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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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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 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이한 말이다. 가을 달 밝은 저녁을 뜻하는 낭만적인 뜻을 가진다. 음력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기도 한 추석은 가배(嘉俳), 한가위, 중추절(仲秋節)로 불리며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다. 또한, 대보름과 더불어 보름달을 상징으로 삼는 큰 명절로, 햇과일과 햅쌀로 빚은 음식을 만들어 한해 농사의 결실을 축하하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나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옥토의 평야 지대에서 풍요로운 추석 명절을 지내는 우리 고장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삼국사기』 중 추석에 관한 내용
『삼국사기』 중 추석에 관한 내용

추석의 유래에 대한 명확한 문헌 자료는 없지만, 고대로부터 있었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추측할 수 있다. 낮의 태양만큼은 아니지만 환한 달빛은 적과 짐승으로부터 두려운 어두움을 걷어내는 더없이 특별한 존재였다. 그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8월 15일인 추석이 큰 명절로 여겨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추석이 우리 선조들의 대표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으로는 신라인의 풍습을 기록한 중국 『수서(隨書)』의 「동이전(東夷傳)」에 “제사 지내기를 좋아하며 8월 15일이면 왕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는 상으로 말이나 포목을 준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 문헌에는 『삼국사기』에 “8월 보름에 이르러 그 공(功)의 다소를 살펴, 지는 편은 음식을 장만해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으니 이를 가배라 한다.”는 추석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있다.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송편(松片)이 있다. 추석의 가을 맛은 송편에서 오고 송편 맛은 솔내에서 온다는 말도 있는데, 송편의 이름은 솔잎으로 찌기 때문에 붙여졌다. 십장생 중의 하나인 소나무는 신선들이 늙지 않는 약으로 먹었다 하여 장수를 상징하는 나무이다. 그 솔잎이 찍힌 모양이 멋스럽기도 하지만 솔향이 배어든 떡은 풍미가 있고 기능적으로는 쉽게 상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음식이 상하기 쉬운 음력 8월 중순에 살균력인 강한 피톤치드가 들어있는 솔잎을 사용한 것은 우리 조상의 생활 속 지혜가 담긴 과학적인 한 수라고 할 수 있다.
 

송편과 신도주.
송편과 신도주.

조선 후기 세시풍속집인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팔월 추석에는 햅쌀로 송편을 빚어 차례를 지내고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한다”고 하였다. 이 풍습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와 송편이 추석의 명절식이 되었고, 올해 가장 먼저 나오는 햅쌀로 빚는 추석의 송편을 ‘오려송편이라고 한다. 솔잎과 함께 쪄내므로 송병(松餠) 또는 송엽병(松葉餠)이라고도 부르고 지역마다 조상 때부터 근방에서 많이 나는 재료를 활용해 송편을 빚어온 까닭에 특색있는 송편이 전해진다. 전라도 지역에는 모시잎 송편과 더불어 꽃송편도 잘 알려져 있다. 꽃송편은 치자와 쑥, 오미자, 도토리, 포도 등의 즙으로 화려한 색을 더해 꽃 모양을 만들어 찐 떡이다. 강원도에서는 산간지방에서 많이 나는 감자와 도토리로 송편을 투박한 모양으로 만들어왔다. 충청도의 호박송편은 밤호박을 삶아 멥쌀가루와 섞어서 익반죽한 다음 깨나 밤을 소로 넣고 찐 떡이다.

추석에는 송편과 더불어 햅쌀로 신도주(新稻酒)를 넉넉하게 빚어 조상에게 먼저 올리고 명절을 쇠러 오는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나누었다. 추석에 빚는 술인 신도주는 새(新) 쌀(稻)로 빚은 술로 신곡주(新穀酒)라고도 불린다. 조선 시대 세시풍속의 정착과 함께 처음 수확한 햅쌀을 이용한 신도주를 빚는 것을 시작으로 가양주(집에서 담그는 술) 문화가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조선 시대의 규방가사인 『관등가(觀燈歌)』에 “우리 님은 어디 가셨노. 팔월이라 추석날에 ‘신곡주’ 가지고 성묘하러 아니 가시는고…”라는 구절에 신곡주가 등장하며, 조선 헌종 때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팔월령(八月令)에도 송편과 함께 신도주가 등장한다. “팔월이라 중추가 되니… 서늘한 아침, 저녁 기운은 가을의 기분이 완연하다. 귀뚜라미 맑은소리가 벽 사이에서 들리는구나… 참깨 들깨를 수확한 후에 다소 이른 벼를 타작하고 담배 몇 줄 녹두 몇 말 등을 파는 것은 돈이 아쉬워서이랴? 장 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잊지 마소. 북어쾌와 젓조기를 사다가 추석 명절을 쇠어 보세. ‘햅쌀로 만든 술(신도주)’과 ‘송편’, 박나물과 토란국으로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이웃집이 서로 나누어 먹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중 신도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중 신도주

추석에 빚는 신도주는 조상의 제사상에도 올리고 여럿이 나누어 마시던 풍습에 따라 가능한 많은 양을 얻을 수 있는 양조 방법을 택해야만 했다. 그래서 차례상에 올릴 청주를 뜨고 남은 술을 걸러 희뿌연 빛깔의 탁주로 만들었다. 추석 때 마시는 신도주를 백주(白酒)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신도주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소개되는데, 아쉽게도 술 이름만 수록되어 있을 뿐 제조 방법이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앞서는 문헌인 『양주방(釀酒方)』에는 술 빚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햅쌀술’이라는 신도주의 한글식 표기로 “햅쌀 한 말을 가루 내어 흰무리떡을 찌고, 끓인 물 두 말을 독에 부어 흰무리 찐 것과 더울 때 고루 풀은 후, 다음 날 햇누룩가루 서 되와 밀가루 세 홉을 섞어 버무려두었다가, 사흘 후에 햅쌀 두 말을 다시 쪄서 식힌 후에 끓인 물 한 말과 함께 밑술과 합하여 두었다가 열흘 후 맑게 익으면 마신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런 술을 빚을 때 쌀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누룩이다. 예로부터 호남평야의 중심이 된 벼의 고을인 김제는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쌀은 물론이고 좋은 술을 빚는데 필수품인 누룩도 김제에서 많이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의 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1493년 <성종실록>에 김제 군수 최반이 관의 물품을 도둑질하여 처벌된 죄목 중에 누룩 50관을 빼돌린 죄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잘 발효된 좋은 누룩을 만들려면 많은 양의 물량과 인원이 동원되어야만 했다. 그러한 까닭에 상품의 누룩은 주로 관이 주도하여 만들면서 귀하게 다루었지만, 이익이 많아지자 점차 백성들도 누룩을 만들어 매매하는 예가 많아졌고 관청에서 빼돌리다가 중형에 처하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인공적으로 누룩의 발효에 적합한 40도가량으로 온도를 조절하기 어려웠던지라 초복 직후에 만들어진 누룩이 가장 상품이었다. 중복과 말복 전에 만든 것을 그다음으로 좋은 누룩이라고 당나라의 농서인 『사시찬요』를 인용한 『산림경제』에 기록되어 있다. 가장 더운 여름 절기에 자연적으로 발효된 최상의 누룩과 질 좋은 햅쌀이 어우러져 최상의 신도주가 나올 수 있었다.

올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무더웠고 태풍이 한반도를 가로지르기도 하여 농민들을 시름에 젖게 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사과, 배, 밤 등 제철 과일도 나올 것이고, 황금빛 들판에서는 햅쌀이 수확되어 추석 명절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추석 송편을 잘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송편은 하늘의 열매로 달을 상징하며 과일은 땅에서 나는 것으로 땅을 상징한다. 송편의 모양은 오므려서 빚으면 반달이 되고 오므리지 않으면 보름달 된다. 송편은 보름달의 모습이 아닌 반달 모양인데, 반달은 시간이 지나면 꽉 차는 보름달이 되기 때문에 조상들은 반달 모양으로 빚으면서 앞으로의 삶이 더 행복하게 채워지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날만 같아라!”란 속담이 있다. 한 해의 수확을 풍성하게 나누고 행복으로 채워갈 날들을 기약하는 즐거운 추석 명절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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