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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2. 미완의 교각과 폐철교의 기억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2. 미완의 교각과 폐철교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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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2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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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철길을 잇는 이야기가 화제다. 단절되었던 남북철교가 이어지는 꿈은 그 바람을 타고 시베리아와 중국을 횡단해 유럽까지 내달리고 있다. 이러한 소망은 비단 우리만의 바람만은 아니었다.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을 맺고 미국의 보스턴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다녀온 조선의 사신들은 기차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했고, 1885년 일본군이 진남포와 평양을 잇는 80㎞의 군용철도인 ‘진평선’을 놓은 것이 우리나라의 첫 철도였다. 우리나라의 철도는 일본의 대륙진출 토대를 다지는 군사적 목적과 수탈을 위한 경제적 목적으로 부설되기 시작했다. 1899년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경인선이 개통되고 1900년 한강철교의 준공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X자형의 노선망을 구축하면서 일본인들은 조선 땅을 관통하는 철도건설에 힘을 쏟았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본격적으로 내정 간섭을 시작한 일본은 조선인들이 1904년 설립한 호남철도주식회사의 부설허가를 취소시키고 1909년 부설권을 탈취한다. 당시 조선이 직접 철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자금조달 운동이 벌어졌다. 전주에서는 ‘호남철도연구회’가 조직되어 관찰사를 위시한 백성들이 중앙의 유지와 뜻을 모아 주식 공모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호남선은 철도 자국 건설 운동에 가장 많은 국민들이 참가한 철도였지만, 일본은 목포, 군산 지방의 일본 거류민들을 동원해 호남철도기성회를 조직하고 전국의 일본거류민단과 합세하여 자국 건설 운동을 좌절시켰다.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마자 식민지배의 기반을 갖추고 수탈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일본인들은 철도건설을 서두른다. 그 일제의 야욕으로 민족 애환이 된 흔적은 우리 지역 만경강과 섬진강 강물 위에 역사의 증거물로 남아있다.

구 만경강철교와 비비정
구 만경강철교와 비비정

만경강에 남은 폐철교인 구 만경강철교(萬頃江鐵橋)는 전북 전주시 덕진구 화전동과 전북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를 잇는 교량이다. 그 전신은 1911년 착공하여 1914년에 준공된 것으로 미츠비시(三菱)사가 만경 평야의 농산물을 반출하기 위해 전북경편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경편철도(주로 농업철도로 사용되는 궤도의 간격이 좁은 철도)를 개통하면서 만든 목교(木橋)다. 교량을 건설하기 전까지는 만경강을 통해 배로 수탈 물자를 운송하였으나, 교량이 완공되면서 삼례역을 통해 철도를 주로 이용하였다. 곡물 수탈의 통로로 경편철도의 활용도가 높아지자 일제는 1927년에 사설철도인 해당 노선을 국유화하고 궤도의 간격을 넓히며 ‘경전북부선’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27년 8월 29일자 중외일보 구만경강철교 착공 기사
1927년 8월 29일자 중외일보 구만경강철교 착공 기사

1927년 8월 29일 자 『중외일보』에서는 조선에서 한강철교 다음으로 긴 만경강철교의 착공을 소개하고 있다. 철제 빔을 대들보 삼아 건설한 스틸거더(Steelgirder) 형식으로 만경강철교(교폭 1,985m, 길이 475.76m)가 1928년 준공되었다. 이후 경전북부선의 교통량이 늘면서 1978년 서대전과 익산 사이의 구간을 복선으로 재공사했고, 1985년에는 제2의 만경강 철교를 설치하면서 철교가 2개가 되었다. 1999년부터 추진한 호남선 고속철도 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에는 철로가 4개로 늘어났고 고속철도가 도입되었다. 2011년 전라선 복선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근처에 콘크리트 소재의 교량을 새로 건설하여 최초의 만경강 철교는 폐쇄되었다.

2003년 운행 중인 만경강철교
2003년 운행 중인 만경강철교

관리기관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11년부터 철도 기능이 중단된 만경강 폐철교를 철거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과 완주군이 오랜 세월 동안 일본강점기 수탈의 아픔과 지역의 애환이 담겨 있어 한국 근현대사의 숱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폐철교를 보존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 결과 2013년 12월 20일 전라북도 등록문화재 제579호로 지정받았다. 현재 이곳에는 4량의 퇴역 열차가 놓여있다. 카페 겸 복합문화쉼터로 구성된 열차는 ‘비비정 예술열차’라는 이름으로 “만경강 8경” 중 5경인 ‘비비낙안’의 주요 자산인 비비정과 함께 만경강 자전거길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향가교각
향가교각

만경강에 문화유산이 된 폐철교가 있다면 섬진강에는 일제가 마저 잇지 못한 미완성 교각이 있다. 순창 풍산과 남원의 대강을 잇고 담양방면으로 곡물을 수송하기 위해 철도 공사를 하다가 일제가 패망하면서 상판을 올리지도 못한 채 남겨진 교각이다. 교각과 이어지는 곳에는 일제강점기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서 마을 뒷산을 뚫어 만든 철도용 터널인 향가터널(384m)도 있다. 전북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의 향가는 섬진강이 유려하게 굽이쳐 흘러들어와 산자락을 휘감고 나가며 강변에 모래밭이 자연적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곳이다.

향가터널 입구
향가터널 입구

향가를 동네에서는 행가 또는 행가리라고 부른다. ‘향가(香佳)’라는 명칭은 섬진강의 물을 ‘향기로운 물(香水)’이라 하고, 강 옆의 산인 옥출산(玉出山)을 ‘아름다운 산’이라는 의미의 ‘가산(佳山)’이라고도 불렀는데 각각 한 글자씩 따다가 향가(香佳)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강 건너 남원 대강(帶江)은 섬진강이 마치 띠처럼 경계를 이루며 흐르고 있어, ‘띠 대(帶)와 물 강(江)자를 써 대강’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경치가 아름다워 예로부터 선조들이 뱃놀이를 즐기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휘돌아 나는 맑은 섬진강변에는 너른 백사장이 있고 기암과 노송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곳이다. 순창 향가터널을 지나 섬진강에 교각을 놓고 철길을 잇는 철로 공사는 섬진강을 따라 금지 방면으로 조성되다가 일본의 패망 후 교각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며 중단되었고 이제는 그 흔적을 짐작할 뿐이다.

향가터널
향가터널

해방 이후 그대로 방치되었던 교각은 2013년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주관한 섬진강 자전거길이 조성되면서 교각 위에 233m의 데크를 설치해 ‘향가목교’란 이름을 얻고 자전거길로 변신했다. 강 위에 오랜 세월의 더께가 두텁게 낀 교각의 모습도 특별했지만 온전한 다리로 재생된 후 강을 쉽게 건널 수 있고 주변 풍광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섬진강 자전거길 인증소가 다리 옆에 설치되어 있고 다리 중간에 있는 스카이워크 전망대가 인상적이다. 전망대에 서면 섬진강이 돌아 나는 순창의 향가유원지와 남원의 대강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투명한 유리 바닥으로 강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인다.

향가스카이워크
향가스카이워크

만경강과 섬진강에 일제의 야욕과 민족의 애환이 담긴 두 곳은 철길 고유의 운명을 다했지만, 풍광이 아름다운 강과 어우러져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미완과 아픔의 기억으로 남아있던 그곳은 당시의 기억에 더해 우리가 만들어가는 추억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을바람이 나들이를 부르는 계절, 비비낙안이 자리한 곳에서 풍요로운 만경강의 정취를 느껴보고, 감성의 강인 섬진강 본류의 중간지점인 향가에서 옛 선조들의 풍류와 그곳에 남겨진 민족의 애환을 상기해보자. 그리고 남북철도의 단절된 구간을 이어갈 바람도 싣고 가을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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