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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천년, 전북 다시 날다 (상) 역사적 의미] 호국·혁신·풍요의 땅 '전라'
[전라도 정도 천년, 전북 다시 날다 (상) 역사적 의미] 호국·혁신·풍요의 땅 '전라'
  • 강정원
  • 승인 2018.10.1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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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통의 발신지·대한민국 국호 유래
한반도 국제교류·문명의 관문
절의·저항·비판 실천력 갖춘 인재의 고장

전라도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말처럼 임진왜란기 전라도가 없었다면 조선이 국체를 보전할 수 있었을지 가늠할 수 없다. 또한, ‘반봉건, 반외세’를 기치로 내걸었던 동학농민혁명운동, 최근 한 드라마에서 주목받은 조선말의 전라도 의병, 민주주의를 갈망한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마다 전라도 민중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떨쳐 일어났다. 전라도는 이처럼 한국사의 변곡점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북도는 오는 18일 전남·광주와 함께 ‘전라도’ 개도 1000년 기념행사를 전라감영터에서 개최한다. 이에 맞춰 천년 전라도의 역사적 위상과 전라도의 역사를 기리는 천년사 편찬과 전라감영 복원 등의 의미를 짚어보고, 새천년을 열어갈 전북의 저력 등을 살펴본다.

△한민족 발신지

전라도 문화의 근원은 마한이다. 마한 문화는 북방의 고조선 중심 문화와 성격을 달리한다. 북방민족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한민족만의 고유한 전통을 형성하면서 중국과 교류를 모색할 정도로 성장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1897년 새로운 국호로 ‘대한(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그 연원으로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을 제시했다. 전라도는 삼한 중 마한의 중심이다.

또 왜란과 호란에 직면했을 때 여느 지역보다 활발하게 의병봉기와 충절을 표출했고, 양란 이후 사회모순이 극에 달했을 때는 날카로운 비판적 식견과 개혁논의(호남실학)로 나라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반봉건 민중으로 상징되는 동학농민혁명, 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의병항쟁, 군사정권에 맞선 광주민주화운동 등 반외세 민중혁명이 모두 전라도 땅에서 일어났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지난 천년의 역사 동안 전라도는 절의와 저항의 실천력을 갖춘 한국정신의 본향이자, 비판적 실천력을 갖춘 인재의 고장이었다.

△국제교류의 관문

전라도 땅은 동북아 국제교류와 경제, 문화의 관문이자 다양한 문명이 융합된 선진문화의 발신지였다.

청자와 선종의 발달, 고려 무신정권의 경제적 배경, 삼별초의 항거거점, 고려와 조선시대에 경상우도와 전라도의 세곡이 운반되던 조운항로 등 전라도 바닷길은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육로였다. 이는 전라도가 국제교류와 정제의 핵심지역이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생명의 터전

전라도는 풍요의 땅이다. 호남평야와 나주평야처럼 광활한 곡창지대가 있었고, 그 바탕 위에 우리나라 최대 저수지로 대표되는 벽골제 등이 만들어졌다. 일제가 군산과 목포를 통해 쌀을 수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 후기인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따르면 전주부의 호수(戶數)는 총 2만947호로, 한양·평양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며, 한양·대구와 함께 3대 시장 중 하나로 주목 받기도 했다. 이와 같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문화적으로도 융성했다.

태인과 담양 등의 가사문학, 조선시대 사대부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소쇄원, 양반과 민중 모두 즐겼던 판소리의 본고장, 서화·음식·한지·출판 등은 전라도가 자랑하는 문화들이다.

박정민 박사(전북연구원)는 “전라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부심을 가질 일이 많고, 오히려 여러 혁신적인 경험으로 한국사를 지탱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전라도 천년을 계기로 우리 스스로 부정적 인식을 떨쳐버리고 혁신을 추구했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 전라도민, 전북인의 자긍심을 갖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는 기회가 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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