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7-18 00:02 (목)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4. 내장산의 가을예찬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4. 내장산의 가을예찬
  • 기고
  • 승인 2018.10.25 2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장산 우화정 단풍.
내장산 우화정 단풍.

가을 내장산은 곱다. 가을에 들어서면 온갖 색들의 향연이 산세를 따라 그림처럼 펼쳐진다. 내장산의 찬란한 계절을 이끄는 단풍은 갓난아이 손바닥 모양을 닮은 아기단풍으로 그 빛깔이 유난히 붉고 화려하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일컫는 ‘화양연화(花樣年華)’란 단어가 가을 내장산에 잘 어울린다. 그렇듯 화려한 가을 내장산이지만, 고즈넉한 산사의 깊은 가을도 내장산의 가을이다. “가고 가도 산길은 구비 구비 끝이 없는데 / 하룻밤 내린 서리에 온갖 나무는 붉게 물들었네 / 쓸쓸한 절간 낯 설은 방에서 문득 놀라 일어나니 / 울음 짖는 먼 기러기 떼는 가을바람 맞고 가는구나” 조선 문신으로 순창군수를 지냈고 의병장으로 알려진 김제민(1527-1599년)이 남긴 ‘내장산유상풍엽(內藏山遊賞楓葉)’이란 시구이다.

선조들도 내장산의 가을 낭만을 즐겼듯이 설악산을 시작으로 산의 맥을 따라 붉게 타오르며 남으로 내려오는 단풍 소식은 이즈음의 내장산을 소개하며 절정에 이른다. 내장산의 가을 유명세는 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매일신보》의 기사로도 알 수 있다. 1927년 09월 13일자에 “觀楓客을 기대리는 井邑內藏山(관풍객을 기다리는 정읍내장산)”이라는 이름으로 내장산을 소개했고, 1928년 10월 27일 자에는 “丹楓의 內藏 內藏의 丹楓 내장산의 단풍구경(단풍의 내장 내장의 단풍 내장산의 단풍구경)”이라는 기사를 사진과 함께 실었다. 이렇듯 기사에서도 매년 가을에 내장산을 소개한 것을 보면 예로부터 내장산이 단풍명소임을 알 수 있다.

내장산은 소백산맥에서 뻗어 나간 노령산맥이 호남에 이르러 전라북도 정읍과 순창, 그리고 전라남도 장성을 어우르며 9개의 봉우리가 동쪽으로 트인 말발굽(⊂) 모양으로 빚어진 산이다. ‘호남 5대 명산’으로 알려진 내장산은 주봉인 신선봉(763m)을 위시한 장군봉, 서래봉, 불출봉 등의 봉우리들이 저마다 독특한 기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호남의 금강’으로 불려왔다. 세조 때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성임(成任)의 <정혜루기(定慧樓記)>에 “호남에 이름난 산이 많은데, 남원에는 지리산, 영암에는 월출산, 장흥에는 천관산, 부안에는 능가산이 있으며, 정읍의 내장산도 그 중의 하나이다”라는 구절에서 ‘호남 5대 명산’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3권 정읍현 백련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3권 정읍현 백련사.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내장산을 기준으로 하천의 수계를 나눈 기록이 나온다. “근원은 정읍현의 내장산에서 나온다. 북쪽으로 흘러 군의 동쪽 15리에 와서 서쪽으로 꺾여 태인수(泰仁水)와 합하여 부안현의 동진으로 들어간다.”라고 하였고, “목제천ㆍ치천 두 내가 모두 내장산에서 나와 현의 서쪽 10리에 이르러 북천에 합친다. 북천 내장산의 물이 노령의 물과 합치고, 흘러서 현의 서쪽에 이르러 고부군 모천에 들어간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호남의 정맥이 되는 노령산맥의 주산인 내장산은 동진강과 섬진강 그리고 황룡강 등 3개 하천을 품어내고 나눈 생명의 산임을 알 수 있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영은사 대웅전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영은사 대웅전

 내장산은 내장사의 본사인 ‘영은사(靈隱寺)’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으로 불렸다가, 산 안에 감춰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안 내(內), 감출 장(藏)자인 내장산’으로 불린다. 또한, 구절양장(九折羊腸)에 빗대어 깊은 계곡이 양의 내장같이 굽이굽이 굴곡을 이루는 산이라 하여 내장산이라 불린다고도 한다. 영은사는 636년(백제 무왕 37년)에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오십 동의 큰 절을 지으며 창건되었다고 하며, 원 내장사였던 백련사(白蓮社)는 660년(백제 의자왕 20년)에 지어졌다 전해지는 사찰로 두 사찰 모두 내장산에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고승을 배출하며 불교문화를 꽃 피운 사찰이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34년 6월 13일_영은사와 내장사에 대한 철거령 내용.
『조선왕조실록』 중종 34년 6월 13일 영은사와 내장사에 대한 철거령 내용.

그러다 숭유억불 정책이 한창이던 조선 중종 때 조정의 사찰 철거령으로 두 사찰 모두 타격을 받게 된다. “사헌부가 영은사와 내장사가 도적승의 소굴이므로 철거할 것을 건의하다”라는 <조선왕조실록> 중종 34년(1539년) 기사에서 내장사와 영은사의 철거령에 대한 관련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이후, 영은사와 내장사는 내장산에서 소실되다가 중창되는 변곡을 지나며 영은사는 근세에 와서 내장사로 개칭되었고, “백련사 혹은 내장사라고도 하는데, 내장산에 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백련사는 추사 김정희의 청으로 벽련사(壁蓮寺)로 개칭되어 ‘고내장(古內藏)’으로도 불려지고 있다.

내장산에는 승병장(僧兵將)으로 활약했던 내장사(당시 영은사) 주지 희묵대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천하장사로 알려진 희묵대사의 힘의 원천을 그가 마시는 물로 여겨 그 물을 ‘장군수’로 샘을 ‘장군샘’이라 부른다. 스승처럼 강해지기를 원한 제자 희천은 스승의 허락 없이 샘물을 마셨다. 희묵대사가 제자의 힘을 시험하려 산봉우리에서 희천에게 돌을 던지자 힘이 세진 희천이 그대로 받아 쌓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희묵대사는 전주에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의 영정을 손홍록과 안의 등과 함께 내장산 용굴과 비례암으로 옮겨 안전하게 지켜냈으며 승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웠다. 1597년(선조 30년) 9월 많은 왜군을 죽이고 전사했다고 전해지며 당시 승병을 배치하고 머물렀던 곳을 유군치(유군이재)로 지휘소였던 봉우리는 장군봉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하여 내장산에 구국의 전설을 더해 놓았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내장산 불출암 원경.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내장산 불출암 원경.

희묵대사가 돌을 던진 봉우리는 마치 밭을 가는 농기구인 써래를 닮았다 하여 서래봉으로 불리며 희천스님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돌무더기는 지금의 벽련사의 석축으로 남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벽련사와 원적암 사이에 있는 돌길인 딸깍다리는 아들을 바라는 부부가 딸깍 소리가 나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건너게 되면 아들을 낳는 소원이 성취된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원적암을 지나 불출봉으로 올라가다 보면 거대한 암벽동굴에 975년(고려 광종 26)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불출암(佛出庵)이 있던 자리가 있다. 불출암에 나한상을 봉안하기 위해 1922년 나한전과 요사를 지었는데 내장산의 주요 사찰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 소실되어 지금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고적도보>에서나마 당대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렇듯, 내장산은 이 산천을 올곧게 품어주고 기원하며 지켜온 사연들이 굽이굽이 깃든 곳이다. 또한, 아름다운 단풍과 더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 굴거리나무 등 희귀식물과 동물들이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로 내장산 일대는 197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사시사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명산이다. 그럼에도 내장산은 단풍터널을 감탄하며 지날 수 있는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이 계절을 놓치지 말고 찬란한 내장산 가을을 눈과 마음에 담아보고 전설로 남은 이야기들에 우리의 추억을 더해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