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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11) 11장 영주계백 7
[불멸의 백제] (211) 11장 영주계백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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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3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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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아야메에게 술상을 봐 오라고 했더니 우물쭈물하면서 계백에게 물었다.

“하루에님께 술 시중을 들게 할까요?”

“너희들 둘이 같이 시중들어라.”

대번에 그렇게 말했을 때 아야메는 방긋 웃었고 하루에는 수줍은 듯 고개를 더 떨구었다. 곧 시녀들이 술상을 들고 왔고 아야메와 하루에가 좌우에서 술 시중을 든다. 노회한 시녀장 마사코는 잔소리 들을 것이 싫은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내궁 안은 조용하다. 외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영주의 거처인 것이다. 먼저 아야메가 따라준 술잔을 들고 계백이 하루에에게 물었다.

“네가 아리타의 첩이라는 것만 알았다. 네 내력을 네 입으로 말해보아라.”

계백이 추상같이 말을 이었다.

“내가 왜국에 와서 내가 죽인 반역도의 첩들이나 거느린 신세가 되었는데 너희들 또한 팔자가 기구하지 않느냐? 어디, 네 지아비를 죽인 원수의 품에 안기는 신세도 좋다고 한 년이니 거침없이 말해도 들어주마.”

그야말로 신라군 진중으로 칼을 휘두르며 돌입하는 계백의 기상이 입담으로 옮겨졌다. 촌철살인(寸鐵殺人), 아야메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하루에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계백을 보았다. 맑은 두 눈이 반짝이고 있다. 눈에 물기가 많으면 등빛을 받아 더 반짝인다. 곧 굳게 닫혔던 입이 열렸다.

“가난한 하급 무사의 딸로 지내다 우연히 아리타님의 눈에 띄어 첩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아리타님이 죽고 또 우연히 영주님께 선택되었는데 제가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렷한 목소리에 막히지도 않는다. 계백을 응시한 두 눈이 두어 번 깜빡였을 뿐 두려운 기색도 없다. 아야메는 숨도 죽인 채 하루에를 응시한 채 굳어져 있고 다시 말이 이어졌다.

“제가 거부하면 20석 녹봉을 받지만 전쟁에서 팔 하나를 잃고 사시는 아버지가 당장 녹봉을 내놓아야 할 것이며 20살짜리 남동생은 병사로 뽑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세 식구의 목숨이 저에게 달렸습니다.”

“그래서 어떤 놈이 왔어도 그놈 품에 안기겠다는 말이냐?”

“예, 장군.”

“나를 주군이라고 부르지 않는구나, 이년.”

계백이 낮게 꾸짖었을 때 처음으로 하루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음 순간 눈 주위가 붉어지더니 하루에가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었다.

“잘못되었습니다.”

“학문은 어디까지 배웠느냐?”

“소토쿠 태자께서 세우신 호오류사에서 경전과 백제 박사들이 가져온 한서를 읽고 배웠습니다.”

계백이 한 모금에 술을 삼키고는 하루에에게 빈 잔을 내밀었다.

“술을 따라라.”

얼굴을 붉힌 하루에가 술병을 집다가 옆쪽 안주 그릇을 건드렸다. 아야메가 얼른 그릇을 제대로 놓는다. 술을 따르는 하루에의 손이 떨리는 바람에 술병 주둥이가 흔들렸다.

“이년이 간덩이가 큰 줄 알았더니 좁쌀만한 년이군.”

혀를 찬 계백이 병 주둥이를 잡아 술을 채웠을 때 하루에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술잔을 든 계백이 아야메와 하루에를 번갈아 보았다.

“너희들 둘이 기둥이 되어서 내실의 기율을 잡아라.”

둘은 숨을 죽였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대륙에서 전쟁을 겪은 사람이다. 너희들의 마음을 왜 모르겠느냐?”

한 모금에 술을 삼킨 계백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산 자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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