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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의 눈물
강제징용 피해자의 눈물
  • 권순택
  • 승인 2018.10.31 19: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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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승소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옹(98). 지난 2005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송을 낸 4명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다. 1심과 2심에서 패소한 이후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승소했고 이듬해 7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1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냈지만 일본 기업의 재상고와 사법농단사태로 재판이 지연되면서 5년만에야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 사이 함께 소송을 제기했던 강제징용 피해자 3명은 대법원의 승소 소식을 듣지 못하고 가슴에 한을 안은채 세상을 등졌다. 백수(白壽)를 앞둔 그는 “오늘 같이 살아서 왔다면 마음이 안 아픈데, 혼자 오니 슬프고 서운하다”며 울먹였다.

이번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을 보면서 감회가 남다르다. 조부도 1944년 40대 중반에 일본 구주 탄광으로 강제징용을 당했다. 탄광 막장에서 강제 중노역과 구타를 당하면서도 집에 남겨진 부인과 7남매를 생각하며 버텨오다 이듬해 8월 해방이 되면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돌아왔다. 하지만 하루 콩 한 줌으로 연명하며 중노동과 가혹행위에 시달린 후유증으로 피골이 상접한 채 돌아와서 시름시름 앓다가 5년만에 돌아가셨다.

정부는 지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피해접수를 받았고 22만여명이 신청했다. 탄광에서 받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노역금을 1엔당 2000원씩 원화로 환산해서 80만원을 수령했다. 1년여 동안 강제 중노동의 댓가로는 터무니없는 액수였다.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 한국유족회에 따르면 아직도 강제노역 피해신고를 못한 사람들이 10만여명이 넘는다.

일제의 강제 징용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진행됐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이듬해인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강제징용에 나선 것. 이 기간 일본과 만주 등 국외로 강제 동원된 사람이 150만명, 국내 작업장에 동원된 사람이 약 200만명으로 추정된다. 당시 인구 2500만명의 14%가 강제 징용 피해를 당했다. 독일은 기억·책임·미래 재단을 만들어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해 강제노동에 동원된 피해자를 단 한명도 누락되지 않도록 접수받고 있다. 이제라도 강제 징용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함께 우리 정부도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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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균 2018-11-08 11:04:31
선생님 좋은기사 잘보앗습니다.

우선 감사드리면서

혹시 이춘식 어르신님에 연락처를

알 수 있으면 해서 노크하게 되엇습니다.



돌아가신 저희 부친께서도

그 시기에 남양군도와 일본 대판에

두 번이나 강제징집으로 고생하신

사실이 있는데 증거부족으로

행정적 신청에서 제외되어



혹시 다른 법적인 절차가 있는지

아님 증거(사진등)물이 없어도

다른방법으로 호소하여

혜택보다도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님에 명예회복이라도

하게 하여 드렸으면 하여서

이렇게 졸필을 올리게 되엇습니다.



혹시 위 어르신님에 연락처나

다른 방법을 모색 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010-9877-9801로

전화 한번 주시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바쁘신중 죄송함 아울르며

물러갑니다.



수고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