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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미래천년 전라도 문화를 만들 전라감영
[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미래천년 전라도 문화를 만들 전라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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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0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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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경 전주성곽 모습
1900년경 전주성곽 모습

△천년 전라도문화의 원형 공간, 전라감영

고려시대 전주에서 지방관을 했던 문인 이규보는 “전주(全州)는 완산(完山)이라고도 일컫는데 옛날 백제국(百濟國)이다. 인물이 번창하고 가옥이 즐비하여 고국풍(故國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백성들은 질박하지 않고 아전들은 모두 점잖은 사인과 같아, 행동거지의 신중함이 볼 만하였다”라고 하여 전주를 백제의 수도이자 품격있는 지역으로 평하였다. 이 같이 전주는 고려시대인 1018년 5도양계의 행정체계에서 전라도 명칭이 처음 생긴후 전라도의 으뜸도시로서 역사의 중심에 자리했다. 이후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 또 현재의 전라남북도와 광주시,제주도를 총괄한 명실상부한 호남제일성 즉, 전라도 관찰사가 머무는 감영도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같은 역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전라감영’이었다.

전라감영(全羅監營)은 조선시대 전라도를 다니며 국가행정이 잘 되고 있는지, 백성을 잘 살고 있는 가를 ‘관찰’한 관찰사(=감사)가 정무를 보던 관청이다.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설치된 시기는 조선초기인 태종연간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관찰사의 정주 업무 수행에 따라 여러 가지 관아시설들이 건립되고, 감영의 기능 확대에 따라 많은 관아건물이 추가로 건립됨에 감영구역이 형성되어갔다. 전라감영은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전라북도 관찰사가 관할하는 관찰부로 바뀌었다가 1910년 일제가 조선을 병탄과 함께 폐지되고, 그 관아시설은 전라북도청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21년 선화당앞에 2층 633평규모의 전라북도청이 신축되었고 1937년 3층, 630평 공간의 전라북도 산업장려관(구 의회동) 이 신축되어 감영의 면모가 크게 훼손되었다. 1951년 선화당옆 창고화재로 선화당과 전라북도청사가 전소되어 1952년 11월 현재의 3층 1752평의 전라북도청 본청 건물이 신축되었고 1984년 서편부지에 4층의 전북경찰청(2676평) 공간이 세워졌다.

전라감영복원논의는 도청이전과 연결되어 1996년 제기되었고 2005년 7월 전라북도청이 신도심으로 이전하면서 본격화되었다. 2006년 선화당위치 확인을 위한 발굴이 진행되었고 감영복원을 위한 용역이 진행되었다. 특히, 2011년 전주역사박물관의 노력으로 선화당의 정확한 위치가 도면으로 확인되고 전라북도청사 등이 철거되었다. 이후 2016년 전라감영복원을 위한 본격적인 발굴을 통해 선화당과 관풍각, 내아 및 비장청 등 관련 공간이 확정되어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2019년 상반기 복원될 예정이다.

관찰사의 통치공간과 연결된 공간이 선화당, 관풍각, 비장청, 내아 등이다. 이와 관련된 공간은 주로 현재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동쪽공간으로 맞은 편인 서쪽에는 아전 등 행정실무 공간이 분포하며 남쪽 공간은 주로 군사관련 공간이 분포하였다. 이와 달리 전주의 문화와 관련된 공간들은 서편 공간에 분포하고 있다.

△전라감영, 한국 전통문화콘텐츠의 보물, 세계문화유산의 디딤돌로 만들자
 

현재 도로 중앙에 위치해 복원 논의에서 제외된 전라감영의 정문인 포정루(우)
현재 도로 중앙에 위치해 복원 논의에서 제외된 전라감영의 정문인 포정루(우)

전라감영은 조선왕조 호남지방 최고 행정기구로서 현재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그리고 제주도를 관할한 행정, 문화, 경제의 중심공간이었다. 특히, 조선왕조 발상지로서 한국 전통문화의 중심도시인 전주를 대표하는 역사문화공간이다.

또한 전라감영은 전라도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즉 전주로 상징되는 전라도의 풍류문화와 완영본으로 대표되는 출판인쇄문화와 전주의 부채, 전주한지 등으로 상징되는 지식창출의 본영같은 역할이 감영의 인방, 지소, 선자청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판소리대사습의 발상지로서 전라도문화를 대표하는 예술문화의 중심이었다. 판소리 대사습은 전라감영과 길 하나사이를 두고 있는 전주부영 즉, 지금의 도청과 시청의 통인들이 섣달 그믐에 망년회형식의 잔치를 벌일 때 서로 뛰어난 소리꾼을 경쟁적으로 불러 행사를 하면서 소리꾼의 소리가 어디가 더 좋았다는 것을 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리경연이 벌어진 전통이 계승된 것이다. 이곳이 바로 서편부지의 통인청이었다. 즉, 전라감영은 정치, 행정 및 지역 경제의 중심 통치공간이자. 군사 경찰 및 사법 행정의 핵심지역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라도 문화가 만들어져 전파된 문화창조 공간이었다. 이들 공간이 서편부지에 대부분 밀집되어 있다.

또한 전라감영은 감사와 관인, 아전, 노비까지 상물림을 통해 함께 밥상공동체를 이루며 음식을 공유하였던 대동의 음식문화 공간이었다. 그리고 도청에 해당하는 감영과 시청에 해당하는 부영의 관인들이 서로 소리꾼을 불러 판소리경연을 통해 문화 주도권다툼을 벌였던 판소리 대사습이 시작된 공간으로 전라감영은 전주의 맛과 멋을 생산하고 소비하였던 공간으로서 한국 전통의 품격과 문화콘텐츠를 대표하는 공간이었다. 또한 지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약재가 매매되던 전주약령시 공간이 감영앞 공간으로 전통의학과 치료공간이기도 하다. 이곳 역시 서편부지에 모두 모여있다. 특히, 고전 소설 콩쥐팥쥐의 무대로서 전라감사의 부인이 된 콩쥐와 이를 시샘한 팥쥐의 후반부 이야기 무대가 내아이기도 하다. 현재 전라감영 복원범위는 선화당과 내아 등 일부 공간에 국한되고 있다. 향후 정문인 포정루와 앞서 언급한 통인방, 의국, 지소, 인출방, 선자청과 함께 등 공간이 확대되면 면모가 더욱 갖춰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현재 완산경찰서 공간인 ⑥중영은 전라도의 군사, 경찰업무를 총괄하는 공간으로 국가방위와 치안의 상징이란 점에서 현재까지도 계승된 경찰청공간과의 역사적 연계성이 확인된다. 이 같은 공간들이 현재 구체적인 복원계획이 잡혀있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이제 2019년 조선왕조의 지방 행정공간이었던 전라감영복원이 이뤄지면 왕권 상징의 공간이었던 객사와 서울 종묘와 위격을 같이하는 의례공간인 경기전, 호남 최대 국가교육공간인 향교, 서민생활 공간을 대표하는 한옥마을 그리고 전주부성 공간인 풍남문과 4대성문지, 성벽길 등을 망라한 도시공간유적을 포괄하여 ‘조선왕조 지방행정공간 유적군’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다면 전주의 역사문화적 가치의 의미가 명실상부하게 부각되어 앞으로 미랴 천년 전라도문화를 대표할 공간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제 전라감영 복원을 시작으로 ‘세계문화유산도시 전주’를 추진하자.

조법종(우석대 역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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