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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5. 겨울맞이 세시풍속, 김장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5. 겨울맞이 세시풍속,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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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0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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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겨울 채비를 하게 된다. 그 월동 준비의 최고는 김장하는 것으로 ‘입동(立冬)을 기준으로 5일 내외에 김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김장용 무를 수확할 때 ‘무의 뿌리가 길수록 그 해 겨울이 춥다’는 입동 맞이 점치기는 김장을 할 때 무뿌리 길이를 살피며 겨울의 추위에 대한 단골이야기의 소재로 쓰였다. 점점 추워질 즈음 겨울에서 봄까지 먹기 위해 김치를 담그는 김장은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우리만의 독특한 풍속으로,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김치’는 자긍심을 가져오는 우리 전통음식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김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전해오는 곳은 중국이다.

김치에 관한 기록은 약 3000년 전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집으로 알려진 『시경(詩經)』에 “밭둑에 오이가 열렸네. 오이를 깎아 ‘저(菹)’를 담그자”라는 구절로 처음 등장한다. ‘저’는 오이를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김치류로 추측되며, 존경하는 사람이 ‘저’를 즐기자 따라 먹은 공자를 보고 “공자가 ‘저’를 먹느라 콧등을 찌푸렸다. 3년을 먹고 나니 적응이 되어서 수월했다”라는 기록도 약 2700년 전 쓰여진 『여씨춘추)』에 남겨져 있다.

『동국이상국집』 「가포육영(家圃六詠)」.
『동국이상국집』 「가포육영(家圃六詠)」.

이렇듯 ‘김치’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담긴 음식으로 상고시대 때 소금에 절인 야채를 뜻하는 ‘침채(沈菜)’라는 말에서 오늘날 김치의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문헌상에 최초로 김치가 등장한 것은 고려 시기 이규보(1168~1241)가 쓴 『동국이상국집』의 「가포육영(家圃六詠)」으로 “소금에 절인 김치는 겨우내 반찬 되네. 뿌리는 땅속에서 자꾸만 커져 서리 맞은 것 칼로 잘라 먹으니 배 같은 맛 일세”라는 문구와 오이ㆍ가지ㆍ순무ㆍ파ㆍ아욱ㆍ박의 여섯 가지 채소로 만든 김치가 기록된 것으로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침장고(沈藏庫)’.
『조선왕조실록』 ‘침장고(沈藏庫)’.

조선 문인 서거정(1420~1488)이 지은 『사가집(四佳集)』에는 배추김치(菘虀 숭제)라는 시가 등장한다. “서풍이 늦가을 배추 향기를 솔솔 불어오자 / 항아리에 김치 담아라 색깔이 한창 노랗네 / 주옹이 나보다 먼저 이것을 좋아했거니와 / 씹어 먹으니 맛이 고량진미와 맞설만하네”, 김치를 좋아한 서거정은 강희맹(1424-1483)이 건넨 중국산 배추 씨앗을 받고 흥겨워 “채소밭을 돌 때면 기뻐서 미칠 것 같다네”라는 시구로 그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시기 기록에는 ‘침장고(沈藏庫)’가 언급되어 당시 김장을 담그는 일을 맡은 관아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조선시대의 성종 시기 성조의 생모인 인수대비가 부녀 교육을 위해 지은 내훈(內訓)에도 ‘침채’가 소개되며 선조들이 김치의 맛과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양촌집』 ‘김장(蓄菜)’.
『양촌집』 ‘김장(蓄菜)’.

또한 ‘김장’이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이어온 겨울맞이 세시풍속임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는 권근(1352~1409)의 『양촌집』 ‘김장(蓄菜)’에서 나온 “시월이라 거센 바람 새벽 서리 내리니, 울에 가꾼 채소 거두어들였네. 맛있게 김장 담가 겨울에 대비하니 진수성찬 없어도 입맛 절로 나네”와 17세기 후반의 김수증(1624-1701)의 『곡운집』에 “집집마다 가을이면 무와 배추를 양지바른 곳에 묻는 김장이 연중행사라”라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조선조의 『농가월령가』(1816년) ‘10월조’에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하오리다. 앞 냇물에 정히 씻어 함담(鹹淡)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요. 양지에 가가(假家)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하였으니 월동 식량으로 김치를 담그는 일이 이즈음에 가사 중 큰 연례행사로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치는 중국의 기록이 최초이지만, 우리 선조들은 각 지역의 특산물을 재료로 활용한 다양한 조리법과 문화를 형성하며 발전시켰다. 1400년대 기록인 『산가요록』에는 파와 쌀밥, 소금으로 만든 생파김치나 송이와 동아, 닥나무잎, 소금으로 만든 송이김치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1500년대의 『수운잡방』에는 채소에 소금을 섞어, 천초, 할미꽃 뿌리, 겨자, 마늘, 후추 등을 섞어 만든 다양한 김치에 대한 기록이 있다. 1700년대 『산림경제』, 『소문사설』, 『증보산림경제』등에 김치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이때 비로소 김치에 고추를 넣는 기록이 보인다. 1800년대 후반에는 통이 크고 알이 꽉 찬 통배추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하여 배추가 김치의 주재료로 쓰이며 배추통김치가 확산되었고, 1900년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37종류의 김치 조리법을 소개했다.

김장철을 맞아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랑의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에서 전주여성자원활동센터 봉사자들이 김치를 담그며 웃음짓고 있다.
김장철을 맞아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랑의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에서 전주여성자원활동센터 봉사자들이 김치를 담그며 웃음짓고 있다.

다양한 부재료를 사용한 김치의 발전과 함께 공동작업의 형식의 풍속인 ‘김장’은 우리만의 특별한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김치와 김장문화’는 우리네 역사와 함께 한 인류문화 자산이라는 점이 인정되어,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 [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라는 명칭으로 ‘2013년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한국의 대표적인 식문화인 ‘김장문화’가 전 세계인이 인정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 김장문화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공동체 나눔이라는 상징적 정서가 숨어 있다.

김장은 월동 준비의 필수적 부분으로서 김장을 통해 나눔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하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김장철마다 많은 단체들이 김치 담그는 데 참여한다. 여기에서 담근 김치는 소외된 이웃과 필요한 이들과 나눈다. 이러한 담근 김치를 나누는 풍습을 통하여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더욱 끈끈한 유대감을 갖는다.

김장을 해놓고, 이제 겨울 준비 끝났다며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웃음 짓던 할머니와 노란 배춧속에 남은 양념을 버무려 밥에 쌓아 주시던 그 기쁨 넘치던 손길이 그립다. 김장김치는 따스한 손길과 고향의 기억을 불러온다. 겨울 채비를 맛깔나고 든든하게 해야 할 지금 남원 운봉과 진안의 고원에서 나오는 고랭지 배추 그리고 임실과 순창의 고춧가루 부안 곰소 젓갈로 김장 준비를 하며 풍요로운 호남의 정도 돌이켜 본다. 나눔의 손길에 힘을 더할 생각에 마음이 따스해지고 김장 양념이 맛깔나게 버무려진 배추 소를 햅쌀로 지은 밥에 싸 한 입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입안에 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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