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8-11-14 22:56 (수)
출생부터 죽음까지, 인간 전봉준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
출생부터 죽음까지, 인간 전봉준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
  • 문민주
  • 승인 2018.11.08 2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정수 전북대 교수, '베일에서 벗어나는 전봉준 장군' 출간
'병술보' 토대, 전봉준 출생·가계·유동생활·죽음 등 서술

2018년 4월 서울 종로네거리 영풍문고 앞에 전봉준(1855~1895) 장군의 동상이 건립됐다. 이 자리는 한말 전옥서 터로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이 공주 우금치에서 진압군에게 패배한 뒤 갇힌 장소이다. 동상 건립을 주도한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는 이를 두고 “동상은 한국사 속에서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이 바르게 평가되고, 제 위치를 찾게 된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동상 건립을 시작으로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는 전봉준연구소를 세워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연구사업을 시작했다. 그 첫 사업으로 송정수 전북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역작 <베일에서 벗어나는 전봉준 장군>을 총서 제1권으로 선정해 발간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병술보>에 수록된 전봉준 장군 관련 기록을 기반으로 한다. 병술보는 1886년(병술년) 천안 전씨 문중에서 간행한 <천한전씨세보 병술보>로 이 족보의 소유자인 고(故) 전성태 씨는 송정수 교수의 외가 쪽 삼촌이다.

송 교수는 <병술보>의 발견 경위와 그 진위를 검토한 뒤 전봉준 장군의 출생과 가계, 유동 생활과 그 기간 만난 동지들, 피체와 죽음 그리고 묻힌 곳에 대한 내용을 순서대로 서술했다. 그는 전봉준의 족보 분석을 토대로 전병호와 전봉준이 동일인임을 입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봉준의 출생지(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당촌)를 비롯해 처가와 외가를 포함한 가계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전봉준이 살아온 마을들을 추적해 유동 생활을 정리했다.

신영우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상임이사는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혁명을 넓은 시각에서 연구하기 위해서는 실증 연구가 필요하다”며 “그런 측면에서 이 연구는 현지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연구였다. 전봉준 장군과 인척이 되는 송정수 교수만이 할 수 있는 연구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송 교수는 전봉준 장군의 무덤으로 추정됐던 정읍시 옹동면 수암마을의 ‘장군천안전공지묘’ 조사·발굴 과정과 결과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2016년 11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는 이 무덤에서 회곽묘(17세기 조선 중기의 묘제)를 발견하고, 전봉준 장군의 무덤이 아니라는 고고학적 판단을 내리고 발굴 조사를 중단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회곽묘는 17세기 조선 중기부터 시작해 전봉준 장군이 살았던 시대 이후까지 사용된 묘제로 발굴한 무덤은 얼마든지 전봉준 장군의 무덤일 수 있다”면서 다시 새로운 발굴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책이 계기가 돼 전봉준 장군의 새로운 모습들이 점차 세상에 드러나 보이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명청사학회, 동양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중국근세향촌사회사연구>, <중국 정사 외국전이 그리는 세계들>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