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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21) 11장 영주계백 17
[불멸의 백제] (221) 11장 영주계백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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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1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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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편지를 읽은 하세가와가 조심스럽게 접더니 앞에 놓았다. 이곳은 하세가와의 저택 안, 안쪽에 앉은 하세가와의 얼굴은 병색이 짙다. 그러나 눈은 번들거리고 있다. 하세가와가 앞에 앉은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계백의 심복 나솔 백용문, 계백이 한상성주 겸 수군항장이었을 때부터 동고동락을 해온 장수 중의 하나다. 그 백용문이 밀사의 임무를 띠고 타카모리의 중신(重臣) 하세가와를 찾아온 것이다. 지금 하세가와가 읽은 편지는 타카모리가 쓴 글이다.

‘타카모리의 영지를 모두 계백에게 바칠 것이니 모두 계백에게 충성해주기를 바란다’고 써진 편지다. 하세가와가 입술 끝을 비틀면서 입을 열었다.

“이 편지를 갖고 오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하세가와의 눈동자는 흐려져서 앞에 앉은 백용문의 뒤쪽을 보는 것 같다. 청은 10평쯤 되었는데 타카모리의 가신 10여명이 둘러앉아 있다. 모두 침통한 표정이다. 편지를 읽지 않았어도 내용을 짐작하는 것 같다. 그리고는 하세가와가 입을 꾹 다물었기 때문에 청 안에 어색한 정적이 덮여졌다. 그때 백용문이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백용문은 가죽 갑옷차림이다. 부하 5명을 데리고 이곳까지 말을 달려온 것이다.

“노인, 타카모리님에 대해서 더 물어보실 말이 없으시오?”

“없습니다.”

하세가와가 여전히 흐린 눈으로 백용문을 보았다.

“장군께선 계백영주의 중신이며 거성(居城)의 수비장이라고 들었습니다. 나한테 오신 목적이 이 편지를 전하시는 것 뿐이시오?”

이번에는 하세가와가 묻자 백용문이 쓴웃음을 지었다.

“노인께 그대로 말씀드릴까요?”

“그럼 말씀하시지요.”

“내 주군이며 상관이시기도 한 계백장군께서 날 보내시면서 딱 한 말씀만 하십디다.”

모두 숨을 죽였고 백용문의 말이 이어졌다.

“하세가와한테 이 편지를 주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주고와라. 이렇게 말씀하십디다.”

“…….”

“묻는 말씀이 없다고 하시니 할 말이 없소.”

그리고는 백용문이 입을 딱 다물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만.”

당황한 하세가와가 따라 일어서려다가 비틀거렸다. 겨우 중심을 잡은 하세가와가 두 손을 내민 채 백용문에게 말했다.

“장군, 잠깐 앉으시지요. 타카모리님에 대해서보다 다른 것을 여쭤보겠습니다.”

다시 자리에 앉은 백용문에게 하세가와가 가쁜 숨을 고르고 나서 묻는다.

“장군, 타카모리 가문은 멸문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백 명 가신, 수천 명 군사는 어떻게 됩니까?”

“내 주군께서는 어떤 말씀도 없으셨으니 내가 내 생각을 말씀드리리다.”

백용문의 목소리가 작은 청을 울렸다.

“아마 네 생각대로 행동하고 오너라 하고 내 주군께서 말씀하신 것 같소.”

“듣겠습니다.”

“그 주군에 그 신하라고 당신들도 다 같소.”

어깨를 편 백용문이 하세가와를 노려보았다.

“타카모리는 목숨만 살려주면 다 드리겠다고 했소. 그자에게는 신하고 주민이고 안중에 없었소. 제 처자식이 몰사했다는데도 눈 하나 끔벅하지 않았소.”

“…….”

“그리고 저 편지를 써 준 것이오.”

“…….”

“그러니 당신들도 마찬가지겠지. 누가 그런 자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단 말인가?”

“…….”

“내 생각을 말하리다.”

백용문이 호통치듯 말했다.

“가신들이 결속해서 내 주군께 복속한다는 서약을 하시오. 그래야 영지가 안정이 되고 주민들이 편하게 살 것 아니오? 그것이 우선이요.”

그리고는 백용문이 길게 숨을 뱉었다.

“영주다운 영주를 만나면 영지 주민들이 첫째로 혜택을 받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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