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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판근(板根)을 키우자
전북의 판근(板根)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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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1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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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얼마 전 제주특별자치도 초청으로 1박2일 ‘명예제주도민우정의날’에 처음 다녀왔다. 제주에서의 근무 인연으로 수년 전 제주의회의 의결을 거쳐 ‘육지것’에서 비록 명예지만 제주사람이 됐다. ‘육지것’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함의가 담겨있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제주사람들의 배타적이고 이질적인 문화가 탄생시킨 단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2년 남짓 살면서 그 말이 제주사람들의 입에서 보다 오히려 우리 자신들이 더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주대 최낙진교수(언론홍보학과)는 “‘육지것’이란 말은 뭍사람은 제주에서 가해자였다는 역사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쓰는 부채의식 언어”라고 말했다. 적극 동의한다. 탐라국부터 지금까지 제주도와 사람들은 단 한번도 ‘육지것‘들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는데 수많은 전란과 고초를 겪었고 지금도 진행형인지도 모른다. 그런 부채의식을 가지고 처음 참가한 명예제주도민행사는 고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자 이념과 지역색의 대결 속에서 피해를 입어온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시간은 환상숲 곶자왈 생태탐방이었다. ‘곶들에 가그네 낭 해오라이, 갠디 자왈드랜 가지 말라이’ (숲에 가면 나무해오고 덩굴엔 가지 말라)는 제주사투리처럼 숲을 뜻하는 ‘곶’과 가시덩굴인 ‘자왈’을 합한 곶자왈은 예전에는 쓸모없는 땅의 대명사였다. 돌무더기로 인해 농사도 짓지 못하고 소 방목지로 이용하거나 땔감을 얻고 숯을 만드는 불모지였다. 4·3사건 당시 무고한 희생을 당한 민초들이 겨우 자기 몸을 숨길 수 있는 고마운 장소이기도 하다. 제주도 전체면적의 6.1%를 차지하는 곶자왈이 보호받기 시작한 것은 이곳이 청정 지하수의 보고이자 동식물 생태분야의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사실이 밝혀진 최근의 일이다.

환상숲 곶자왈에는 8백여종의 식물이 산다. 그중 검붉낭이라 하는 푸조나무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바람이 거세고 돌투성이 화산섬 제주에서 나무들은 살기위해 무척 애를 쓴다. 버티면서 치열하게 산 흔적이 바로 판근(板根)이다. 나무의 뿌리는 보통 땅 속으로 뻗는다. 그런데 나무의 곁뿌리가 평판 모양으로 되어 땅위에 노출되는 것을 판근이라고 한다. 제주의 곶자왈은 바닥이 온통 돌이다. 그래서 나무들이 아래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땅위로 판처럼 뿌리를 키운다. 사람으로 치면 금수저,은수저,흙수저가 아니라 ‘돌수저’로 태어나 바위를 뚫고 성장하는 나무다. 강인한 제주인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 전북인들은 어떨까? 최근 모처럼 전주시 관련 기사가 중앙언론에서 주요뉴스로 다뤄졌다. 어느 기업이 전북에 초고층타워를 짓는다는 기사였다. 하지만 언론들은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롯데타워가 123층인데...60만 도시에 143층 마천루?’, ‘전주에 143층 타워 짓는다는데...’처럼 부정적인 뉘앙스의 기사가 이어졌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 사업이 얼마나 사업적 타당성이 있는지는 모른다. 인허가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과 시민공론화위원회를 거쳐 따져 물으면 된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것은 은연중에 내포된 고질적인 수도권 대도시 중심의 사고다. 서울의 남산타워는 되고 왜 전주는 안되는가? 특정지역중심의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되면서 과거보다 인구가 60만 규모로 줄어든 것도 억울한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일까? 한옥마을 유지 명목으로 개발은 제한하면서 왜 143층은 안되는 것일까?

태풍에 버티고 바위를 뚫기 위해서 언제까지나 땅 속으로만 뿌리를 내려서는 안된다. 땅 위로 나무의 근육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판근을 키워야 한다. 전북인의 판근을 뿌리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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