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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홍엽(紅葉)을 밟으며
[금요수필] 홍엽(紅葉)을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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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1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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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규 수필가
김철규 수필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가을을 보내는 것이 서러워서인지, 아니면 살바람에 폭설이 쏟아질 겨울이 다가옴을 두려워해서인지 직지사 일주문부터 대웅전 앞까지의 도로는 홍엽으로 단장한 실크로드다.

비에 젖은 홍엽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차마 밟혀 상처를 입지 않을까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듯이 몇 번이고 발밑을 보았다.

대웅전 부처님께 참배를 하고 나와 보니 비는 멈추고 화사한 오색단풍은 손짓을 하며 기념사진을 찍으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마침 군산예술촌 동아리 문인 일행들과 함께 문학기행을 왔기에 합동기념촬영이 필요해 저마다 멋진 포즈로 몇 컷했다.

직지사 경내 어느 곳이든 가나는 사람들은 홍엽 꽃 속의 주인공들이다. 마치 음력 10월 초 하룻날이어서 절간의 고요함을 깨는 스님의 법문소리와 목탁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메아리 지고 있다. 숙연함 마저 감돌게 하는 침묵의 고요 속에 청아하게 울려 퍼지며 중생들을 일깨우는 소리가 백팔 번뇌 고깔모자를 쓰고 지나간다.

30여명의 일행은 끼리끼리 기념사진을 찍으며 자연과 어우러진 진풍경의 낙엽의 화두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사방에 둘러싸인 산은 구름의 자태로 장식되어 동양화 한 폭이다. 특히 박물관 옆길에 쏟아진 낙엽은 어느 소녀가 제 무게에 겨워 스스로 몸을 놓고 한없이 가벼움으로 세월에 날리는 파편을 주우려는 모습에 발걸음이 멈춘다.

홍엽의 양탄자를 걸으면서 흰 구름이 산자락을 휘어감은 모습에 취해 비를 멈춰준 하늘을 보느라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깜빡했다. 뒤늦은 달음박질은 약속장소인 일주문 앞에서 모두를 만날 수 있었다.

직지사에 인접해있는 백수 정완영 문학관을 찾았다. 우리나라 시조시학에 권위자중의 한사람으로 자연과 아름다운 삶을 노래한 백수의 <조국>시를 새삼스레 바라보며 마지막 소절인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를 되새겼다.

97년이란 긴 인생여정에서 생전인 2008년 국비, 도비, 시비 등 22억여 원으로 백수문학관을 세웠다는 설명에 아연했다. 왜냐하면 군산의 채만식문학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백수문학관과 이웃한 몽향 최석채 선생 유적비와 세계 언론자유영웅 50인 기념비를 보았다. 몽향 최석채 선생은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주필, 문화방송과 경향신문의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세론을 대변하고 역사를 증언했다. 우리 언론사에 크게 새겨질 정론의 대 논객이었고, 직필의 참 언론인이었다.

같은 언론인 출신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비문을 새겨 읽으며 매주 한 차례 실리는 그의 칼럼은 서슬 퍼렇던 독재정부에서 한줄기 소나기였고, 핍박받는 자들의 위안이자 피난처였다는 업적에 고개를 숙였다.

세상이 잠시 홍엽으로 장엄하다. 홍엽들이 마지막 떠나가는 길 위에서 몸 버리는 저들 중에 어느 하나 생애에서 목마른 사랑을 이룬 자 있었을까? 저들만의 그리움이 안타깝게 쌓여가고 있다. 올가을의 동아리문학기행은 내 마음이 오색중 하나인 홍엽에 젖은 까닭을 묻고 있다.


* 김철규 수필가는 전북일보 편집부국장과 논설위원을 거쳐 전라북도의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국문인협회 군산지부장과 새군산신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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