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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색깔
삶의 색깔
  • 기고
  • 승인 2018.11.1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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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 시인·前 전북여고 교장
김형중 시인·前 전북여고 교장

일상에서 분별없이 다가오는 잡다한 것들을 어떻게 대처하면서 사는 것이 슬기로울까? 모래알들이 쌓여 사막이 되고, 물방울들의 집합체가 바다를 이루듯, 생활의 부분들이 하나의 모둠이 되고, 순간들이 이어져 일생의 역사가 이루어져가는 상황들이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한다.

빛과 소리와 색깔은 인간들을 깨우쳐주는 길라잡이다. 이것들이 있었기에 슬기롭고 똑똑할 수 있었고 인간다운 감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내 삶은 어떤 방향으로 어떤 틀을 만들어야할까? 날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나이테만 누적시켜 가며 잔소리와 간섭에 익숙해진 눈치 없는 노인이 되어가지 말고, 옆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상대를 품어주는 따뜻한 인성을 가진 어른이 되어가는 삶을 찾아가자.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인지하며 살아가는 유일한 동물이다. 생명체들은 자신의 생존이 위태로워 질 경우 사력을 다해 마지막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그 유전자를 후대로 이어가기 위해 몸부림한다. 이 같은 현상을 종족보존의 본능이라 말한다.

한편 후회가 없는 삶을 이어가는 사람은 지난날의 허물을 돌아다볼 줄 모르는 사람이다. ‘조금만 더 잘해줬더라면’ ‘그때 그랬더라면’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는데’ 등의 후회가 고통을 동반하는 이유는 망각 뒤에 따르는 상황이 또다시 반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 않았었거나 못 다한 것들에 대한 후회, 이미 지나버린 것들에 대한 후회, 관계에서 비롯되었거나, 시간과 재물의 낭비였거나, 성급한 버릇으로 저질러진 행위의 결과를 돌아다보는 후회’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안타깝다.

유대인들의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서 개념을 넓혀가고 주체성을 키워나가는 식탁교육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그들은 ‘뿌리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자신이 누구인가를 찾게 하여 미래를 개척해 가는데 힘의 원천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우리들은 시민 개개인이 주권자인 사회에서 21세기를 누려가고 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의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와 의도에 욕망의 색깔까지도 헤아려야하는 복잡다단한 오늘의 삶이다.

젊음은 순백이라서 오염되기 쉽고, 분별에 약하기 때문에 어떤 색깔이든 여과 없이 물들여지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비로소 성인이 되어간다. 젊은 시절의 꿈은 일생을 좌우하기에 언제나 가슴앓이가 뒤따른다. 그 꿈의 설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자기만의 선명한 색깔이 있어야하며, 구체화할수록 성공확률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특히 청소년시절에 그렸던 동경의 그림은 뇌리에 새겨져 삶의 밑그림으로 작용한다. 그런 아픔이나 시련도 이겨낼 수 없는 의지라면 처음부터 다른 길을 택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오르막길 뒤에는 내리막길이 있듯이, 삶의 희로애락도 세월이 지난 뒤에야 그 맛을 알게 된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스산해진 거리에 생을 다한 낙엽들이 초라하게 뒹구는 현상이 애처롭다. 지난날들을 더듬으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인생은 되지 않도록 살아가자. 마음 한구석으로 공허가 밀려들 저무는 늦가을에 시린 손을 주머니 속에 넣어 봐도 손은 여전히 시려온다. 본능적으로 부(富)를 비롯한 힘과 높고 편한 자리를 찾아 헤매는 모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에도 시계바늘은 오늘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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