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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 화백의 섬진팔경 이야기] (5) 구담 (하) - 느리고 자유로운 곡선의 물줄기
[송만규 화백의 섬진팔경 이야기] (5) 구담 (하) - 느리고 자유로운 곡선의 물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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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2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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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 가을.2017.134x197 순지에 수묵채색
구담 가을.2017.134x197 순지에 수묵채색

자주 왕래하기에는 불편하다.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갈 수 있다. 강진면에서 덜덜대는 비포장도로를 다니는 군내버스가 하루 서 너 번이나 다니는지, 천담에서 내려 3km를 더 걸어 가야한다. 그래도 갈 곳이 있으니 망설임 없이 화구며 간식거리를 잡다하게 챙겨간다. 정읍댁이 있어서다. 주변의 친구가 소개해 준 집이다. 널찍한 안방을 내어주면서 작업실로 쓰라고 권했다. 무슨 인연인지 그의 이름이 내 아내와 같다. ‘양금’이!

밖에라도 나가있을 때 끼니가 다가오면 부른다. ‘화가 양반~’ 따끈한 밥상에 반주도 빼놓지 않으니 넉넉하지 않은가. 그 손맛 중에는 특히 다슬기 요리다. 작은 소쿠리 옆에 끼고 강에 내려가 순식간에 잡아온다. 확독에 닥닥 갈아서 껍질을 골라내고 애호박에 부추 잘게 썰어 넣고 끓인 찐하고 푸른 국물은 그야말로 별미다. 그 맛은 다슬기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근처 강물에서 건져 올린 둥글하고 노란색을 띤 모양으로 작지만 쫄깃하게 씹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을 앞 끝자락에 당산마루가 있다. 마을에 사람들이 북적대고 지낼 때는 마을공동체적 의례인 당산굿을 지냈었다고 한다. 내가 이곳에 처음 오던 해 정월 보름날 달빛아래 노부부 둘이서 당산나무에 금줄을 매놓고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 때쯤이면 마을 주변의 닥나무를 베어 나르느라 분주하다. 강가에 돌을 쌓아 만든 대형 솥에서 며칠인가를 찌고 강물에 다시 며칠을 담가 놓는다. 불어난 닥은 아낙들의 손으로 껍질은 벗겨지고 한지의 재료로서 공장으로 간다.

고요한 시간이 되면 주변에 아름드리 느티나무로 둘러싸여 원형을 이룬 마당에 멍석이라도 깔아 눕고 싶다. 하기야 가을이면 낙엽으로 포근한 멍석이 되어 버리는 당산! 자연이 인간에게 안겨주는 축복이다. 사방 어느 곳을 바라 봐도 그냥 흘려보낼 곳 없어 어딘가에 담아둬야 할 것 같은 천혜의 창조물이다. 발아래 저쪽 9시 방향에서 다가오는 강물은 너럭바위에 쉬고 있던 재두루미의 목을 적셔주고 늪에 어우러지다 앞산을 휘돌아 장구목 쪽으로 흘러간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곡선의 물줄기는 느리고 자유롭게 흐르고 있다. 두루두루 주변을 챙긴다. 그래서 섬진강이고 또한 그것들은 내 그림의 밑천이 되어 왔다.

아침 산책을 나설 때면 설렘과 망설임이 다가온다. 가야할 곳이 여러 갈레이니 그러기도 하다. 우측에 비탈진 밭고랑을 지나면 계단식 논들이 설치 되어있다. 이른 봄 시린 손을 불어가며 걷다보면 논두렁 사이로 가녀리게 조용히 아주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산 능선에 쌓였던 눈과 얼음이 녹아 흐르는 물이다. 갓 돌 지난 사내아이의 오줌 눕는 소리 같다. 새 생명, 희망의 소리다.

영화인들도 놓치지 않았다. 1998년 이 곳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시절’의 영화촬영 표지석이 강을 바라보기 가장 좋은 곳에 세워져 있다. 아프고 쓰린,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영화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달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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