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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살리는 천명의 기적
지역을 살리는 천명의 기적
  • 기고
  • 승인 2018.12.0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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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총 이상한계절·싱어송라이터
김은총 이상한계절·싱어송라이터

잡지 [Wired]의 창간자 케빈 켈리는 「천명의 진정한 팬(1000 True Fans)」이란 책을 통해 ‘개인 창작자는 골수팬 1000명만 있으면 먹고 산다’고 주장한다. 성공하는 소수 20%들만 누리는 블록버스터급 히트, 소위 대박을 터트리지 못하더라도 천 명의 골수팬들이 미적지근한 팬들에 비해 더 많이 구매하고, 창작자에게 직접 구매하고, 새로운 후원 모델을 지지해준다면, 창작자들은 굶어죽지 않고 지속가능한 창작활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내가 지역에서 음악을 시작하고 가장 많은 시간 고민해온 주제 중 하나도 지역에서 음악하며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이다. 독립적인 주체로서 내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찾는 건, 한 사회구성원으로서 필수적이고 이 시대 청년들이 앓는 공통과제로써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음악창작을 업으로 하는 뮤지션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만이 아닌 직업으로서 음악활동의 지속유무가 달려있는 난제다.

그동안 지역에서 음악을 지속하는 방법은 레슨이나 다른 일용직 일을 병행하거나 창작을 최소화하고 공연수익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순수하게 음악창작활동만으로 이룬 성공사례는 매우 드물다. 음원수익은 소수에게만 편중되어있고, 지역은 최소한의 지역음악시장조차 매우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지역에서는 여유 있게 음악활동 하는 것을 바라거나 상상할 수 없고,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창작하며 활동하는 팀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케빈 켈리의 골수팬 모델을 지역에서 이룰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지역 내 골수팬들을 확보하고, 그들의 소비를 통해 창작자들의 작업이 지속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창작자들이 안정적으로 창작을 이어갈 수 있고, 지역만의 독창적인 창작물이 탄생할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고무적인 것은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창작자 후원 모델이 최근 꽤 많은 성공사례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천 명의 힘이 발휘된 사례가 있다. 바로 ‘천년전주사랑모임’에서 매년 연말 가장 활발하고 유의미한 활동을 한 문화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천인갈채상‘이다. 천 명의 시민들에게 1인당 1만원씩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후원한 시민들이 직접 후보를 추천, 모바일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그렇게 시민들 천 명이 자발적으로 예술가들에게 상과 상금을 수여함으로써 지역예술가들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상의 의미를 넘어선다. 상을 수여하는 시민들에게는 직접 지역예술가를 후원하는 특별한 경험을 갖게 하고, 지역예술가들은 지역민들에게 자신의 활동성과를 인정받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렇게 시민들과 예술가는 상을 매개로 만나게 되고, 그 속에서 진정한 골수팬도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상을 통해, 케빈 켈리가 말하는 천명이 한 창작자를 살리는 사례를 어렴풋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 개개인이 천 명의 수를 모으기엔 쉽지 않지만, 우리 모두는 얼마든지 천 명 중의 한 명이 될 수 있다. 골수팬 모델은 지역의 다양한 창작자들에게 얼마든지 적용가능하고,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 다양한 분야의 창작물을 지속적으로 소비해주는 것만큼 지역문화와 예술을 살리는 확실한 길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화를 통해, 지역민들이 더 풍요로워지고 풍족해질 수 있다면, 1000명이란 숫자는 결국 우리 모두를 살리는 숫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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