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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원 작가 서평] 보정 김정회 선생 시집 ‘梅妻(매처)를 찾아가네’
[장성원 작가 서평] 보정 김정회 선생 시집 ‘梅妻(매처)를 찾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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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1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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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시문학의 새로운 발굴

보정 김정회(普亭 金正會) 선생의 시집이 출판되었다. 본래 한시로 지었던 것들을 이번에 우리말로 옮겨 「梅妻매처를 찾아 가네」라는 시집으로 간행한 것이다. 매처란 매화를 아내로 삼는다는 뜻이다. 속세의 명리를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고고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보정 선생은 1903년 고창읍 도산리 명문에서 태어나셨고, 1970년 67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장례는 고창 문인장(文人葬)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 정도로 문인으로서 명성이 높았다. 선생은 유학자요, 한학자이고, 시인이며, 서화가였다. 가히 세 가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삼절(三絶)이라 부를 만 하다. 서화는 1938년 일본 문전(文展)에서 특선을 수상했고 1956년 대한민국 국전에서는 입선의 영광을 안았다.

선생의 집안은 덕문(德門)이었다. 일제치하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보통학교를 설립할 때 많은 토지를 희사했다. 대흉년이 들었던 해에는 곳간 양식을 풀어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선행을 베풀었다.

보정 선생은 부안이 낳은 대표적 전원시인 신석정(辛夕汀, 1907~1974년) 선생과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다. 보정 선생이 4년 연상으로 동시대인이었다.

고창의 보정 선생은 유학과 한학을 바탕으로 한시의 형식을 빌려 한자로 시를 지었다. 부안의 석정 선생은 불교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자유시를 썼다. 이렇듯 두 분의 철학적 바탕과 표현 문자와 형식은 상이했다.

그러나 두 분의 시문학 정신과 주제와 시대사상은 다르지 않다. 두 분 모두 공통적으로 자연을 찬미하고 전원을 이상향으로서 동경하면서도 항일(抗日) 정신을 일관되게 지키나갔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보정 선생의 1933년 작 「송농(松儂)에게」와 석정 선생의 1939년 작 「슬픈 구도(構圖)」는 다 같이 일제 암흑기 암울한 현실을 개탄하는 작품들이다.

보정 선생의 시는 역시 금강산 연작시 22 수가 진수라 할 것이다. 그 중 「구룡연(九龍淵)에서 감탄하여 부르짖다」를 읊어보면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관동별곡」을 읽는 것 같은 시적 감흥을 느끼게 된다. 장쾌하고 호탕하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구룡연 물이 천상에서 내려와

한 폭의 흰 비단으로 서늘한 가을이 되고자 함을!

 

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이 비로봉 상상봉이

천상에 닿으니 웅장한 봉우리들 모두 고개 숙이는 것을!

 

높이 오를수록 용솟음치는 기운 맑은 기(氣) 끌어 모아

만고(萬古) 시름 말끔히 씻어보네. <하략>
 

아홉 마리 용이 폭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은 구룡연 절경 앞에서 나라 잃은 선비가 만고 풍상을 깨끗하게 떨쳐버리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한자로 지어진 보정 선생의 시들은 자칫 사장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참에 선생의 손자인 교육학자 김경식(金璟植) 박사의 감수와 한시연구가 이정길(李正吉) 씨의 상세한 역해로 한글번역판이 상재되었다. 6백97 페이지에 이르는 시 전집이다. 여간 경하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로써 보정 선생의 시문학이 새로 햇빛을 보고 재생(再生)되었다 할 것이다.

정극인(丁克仁, 1401~1481), 이매창(李梅窓, 1513~1550), 이병기(李秉岐, 1892~1968), 그리고 신석정, 서정주(徐廷柱, 1914~2000)로 이어지는 전북 시문학의 전통은 우람하고 찬연하다.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한다.

보정 선생의 시작품들도 전북 시문학의 산줄기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한 문학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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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원(張誠源) 작가는 김제 출신으로 동아일보 논설위원 등을 거쳐 제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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