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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8. 새해맞이 음식, 떡국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8. 새해맞이 음식, 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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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0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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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나온 ‘첨세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나온 ‘첨세병’

“천만 번 방아에 쳐 눈처럼 둥그니
저 신선 부엌의 금단과도 비슷하네
해마다 나이를 더하는 게 미우니
서글퍼라, 나는 이제 먹고 싶지 않은걸”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지은 <첨세병(添歲餠)>의 시구이다. 그는 “세시(歲時)에 흰떡을 쳐서 만들어 썰어서 떡국을 만드는데 추위와 더위에 잘 상하지도 않고 오래 견딜 뿐 아니라 그 깨끗한 품이 더욱 좋다. 풍속에 이 떡국을 먹지 못하면 한 살을 더 먹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 이름을 ‘첨세병’이라 한다.”며 시를 지은 의미를 소개했다. ‘첨세병’은 새해 떡국을 먹음으로써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나이를 물을 때 떡을 넣고 끓인 탕인 “병탕(餠湯) 몇 사발 먹었느냐”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병갱(떡국)’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병갱(떡국)’

설날 차례상에 올릴 음식과 세배 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음식을 통틀어 세찬(歲饌)이라 하고 대표적인 세찬이 바로 ‘떡국’이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오래된 것으로 신년 제사 때 먹는 음복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떡국에 대한 기록은 1609년의 『영접도감도청의궤』에 ‘병갱(餠羹)’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정조 15년(1791년) 12월 24일 ‘하번군에게 양식을 주어 보내도록 명한다’는 기사에 “고향 돌아가는 길에 양식을 주어 보내어 부모·처자와 함께 새해 병갱을 배불리 먹게 하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서도 새해에 떡국을 먹어왔던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시 병갱은 국수나 수제비, 떡국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고 오늘날의 떡국은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나온 문헌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시대 풍속을 적은 『열양세시기(1819)』에는 “흰떡을 조금씩 떼어 손으로 비벼 둥글고 길게 문어발같이 늘이는데, 이를 권모(拳摸·골무떡)라고 했다. 섣달그믐에 권모를 엽전 모양으로 썰어 넣은 뒤 식구대로 한 그릇씩 먹으니 이를 떡국(병탕·餠湯)이라 한다”고 했으며, 『경도잡지(연도미상, 정조 때로 추정)』에서는 떡국을 “멥쌀로 만든 떡을 치고 비벼 한 가닥으로 만든다. 굳어지기를 기다려 엽전같이 얇게 썰어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춧가루 등을 넣고 국을 만든 것이다. 세찬으로 없어서는 안 된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을 떡국 몇 그릇 먹었냐고 할 정도다.”고 했다. 『동국세시기(1849)』에는 “찐 멥쌀가루를 안반(案盤·떡을 칠 때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 위에 놓고 떡메로 쳐서 길게 뽑은 떡을 백병(白餠·흰떡)이라 하고, 이를 엽전 모양으로 썰어 국에 넣고 쇠고기 혹은 꿩고기를 곁들여 끓이면 떡국이라 한다. 이것을 제사에도 쓰고 손님 대접에 사용하므로 세찬에는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라 기록했다.

예전의 떡국은 지금의 가래떡과는 달리 생으로 반죽해 동그란 모양으로 떼어낸 떡국을 즐겼는데, 이를 생떡국이라 불렀다. 그리고 쇠고기가 널리 쓰이기 전에는 꿩고기로 맑은 육수를 내거나 꿩고기를 볶아 넣은 ‘꿩 떡국’이 원조 떡국이었다. 하지만 귀한 꿩이 없을 때는 닭고기를 주로 썼다고 하여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는 각 지역에 따라 떡의 모양과 떡국에 들어가는 재료와 애칭도 다양하다. 궁중 음식의 영향을 받은 서울식은 육수에 떡을 넣고 끓인 뒤 달걀지단과 고명을 올린 모양으로 지금껏 전해지는 일반적인 떡국 형태로 서울을 기준으로 남쪽 지역에서 주류를 이룬 떡국이다. 충청도에는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를 반죽해 찌지 않고 손으로 뜯어 넣어 ‘손 떡국’으로 불린 ‘날 떡국’이 있고, 경상도지역에서는 동그랗게 썬 떡 모양이 마치 태양 같아 이름이 붙은 ‘태양 떡국’이 있다. 전라도에는 닭으로 육수를 낸 국물에 두부를 넣어 함께 끓인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두부 떡국’과 전통식 ‘꿩 떡국’이 별미로 있고 남해안에는 굴이나 해물을 넣은 ‘굴 떡국과 매생이 떡국’도 있다.

떡국지도
떡국지도

떡국을 기본으로 응용을 한 남쪽 지역과 달리 북쪽 지역에서는 떡국에 만두도 함께 넣었다. 떡국 대신 만둣국을 먹기도 하는데 만두를 즐긴 중국과 가까워 영향을 받았거나 쌀농사를 많이 짓지 않아 쌀로 만든 떡 대신 밀이나 메밀 등으로 빚은 만두를 사용한 이유도 있다. 평안도의 ‘굴린 만둣국’은 말 그대로 완자 모양의 만두소를 만두피로 싸지 않고 감자 전분에 굴려서 만든 북부지역의 대표 음식이다. 강원도엔 ‘두부 떡만둣국’과 황해도엔 소금에 절인 배추인 강짠지로 만두소를 만들어 아삭한 식감이 별미인 ‘강짠지 만둣국’이 있고, 개성엔 ‘조랭이떡국’이 유명하다. 대부분의 떡국 떡이 둥글고 어슷한 것과 달리 조랭이떡은 조롱박이나 누에고치 모양이다. 가늘게 뽑은 가래떡을 굳기 전에 나무칼로 비벼 작게 토막 낸 후 모양을 만들었다. 조롱박 모양으로 떡을 만든 이유는 옷끈이나 주머니에 다는 조롱박이 액을 막아주고 새해 복을 기원하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과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 사는 사람들이 고려가 망하자 분한 마음에 이성계의 목을 조르듯이 ‘떡을 비틀어 조롱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이렇듯 지역에 따라 맛과 재료도 다른 모습이지만 새해 꼭 먹어야 하는 첫 음식인 떡국의 의미는 조선 팔도가 같이 공유했으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떡국의 흰색은 경건한 삶을 의미하고 긴 가래떡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이며 떡을 엽전 모양으로 동그랗게 써는 것은 재복을 바라는 의미이다. 또한, 떡국은 흰(白)색 떡에 붉은(赤)색 고기, 파란(靑)색 파, 노란(黃)색 달걀노른자 지단, 검은(黑)색 김을 고명으로 얹어서 음양오행설에 색을 맞추며 그 의미를 확장한 음식이다. 설날 먹는 떡국 한 그릇에는 경건함과 건강, 풍요에 대한 소망을 담은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하며 복(福)을 맞이하는 선조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그런 음식이니 새해맞이 덕담을 건네며 나누기에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2019년 새해가 되자 떡국을 먹은 사람도 먹지 많은 사람도 모두 한 살의 나이를 먹었다. 떡국 나이를 먹는 것이 서글퍼서 신년 떡국을 마다한 사람들도 돌아오는 구정에 어김없이 세시 음식인 떡국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설날 으레 먹는 떡국에는 새해를 맞는 다짐과 바람이 올곧이 깃들어 있다. 어쨌거나 나이를 잘 먹는다는 것은 설에 떡국을 함께 먹으며 서로에게 새해 덕담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라는 선조들의 귀한 가르침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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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컬리 2019-01-09 10:35:32
외가인 순창에 가면 닭장떡국을 해주셨었는데 그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친가는 이북쪽에서 넘어오신 분들이라 매년 새해에 떡만둣국울 먹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전라북도 특색있는떡국은 뭐지? 2019-01-08 21:56:52
진짜 전라북도에서 떡국을 끓일때 쓰는 재료는 뭔가?? 전라도라고 하면 닭장떡국 이러는데, 정작 전라북도에서는 닭장떡국은 본적없음. 닭장떡국은 주로 전남동부나 내륙지역에서 하는건데, 전북은 쇠고기떡국이나 닭은 닭인데 닭장떡국이 아닌 닭육수로 끓이고 고명을 닭을 얹는건 봄.

랑이 2019-01-04 09:33:28
떡국먹고 나이 먹는다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좋은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