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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 화백의 섬진팔경 이야기] (11) 왕시루(하)
[송만규 화백의 섬진팔경 이야기] (11) 왕시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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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1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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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시루봉 겨울  2017  140x200 장지에 수묵채색
왕시루봉 겨울 2017 140x200 장지에 수묵채색

지리산은 아픈 역사만큼이나 식물들도 수난을 겪어야 했다. 조선시대 유산기(遊山記)에서 “나무들이 하늘을 덮었고, 밑에는 세죽이 빽빽하게 밀집하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마땅히 수십 그루를 찍어 넘겨야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에서 격랑의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방화와 남벌, 화전 등으로 수없이 쓰러져 갔으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진정의 기미를 보였다. 그렇게 모진 수난에서도 꾸역꾸역 이 땅을 지켜내고 있는 들꽃들이 눈에 띈다. 지난한 역사, 어찌 잊으랴마는 신숙주의 노래처럼 ‘원추리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잊었으니 시름이 없다’하니 하늘이 내려 보내기라도 했나? 군락지에 훤하게 피어있는 원추리 앞에서 어떻게 근심을 갖으랴! 노고단에서 만났던 이질풀이 이곳에도 있구나. 이름과는 전혀 다른 자태를 뽐내는 작은 꽃, 한방에서는 노관초(老官草)라고 부르며 지사제로 유익함까지도 주니 더욱 예쁘다. 바위에 걸터앉아 쉴 참이면 발아래 밝은 미소로 힘겨움을 덜어주는 노~랑제비꽃, 뭐니 뭐니 해도 지리산의 절경이라 할 수 있는 헬기장 주변에 보드랍고 유연하게 흔들거리는 억새사이로 들어오는 섬진강에 포근한 구름이 내려앉고 있다.

예부터 사람들은 산과 더불어 보금자리를 만들고, 기슭에서 의식주를 해결해나가며 삶을 꾸려왔다. 한편 지리산은 산자락을 그림자로 드리운 채 남해로 흐르는 섬진강의 맑은 물이 백사장과 함께 지리산의 비경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섬진청류(蟾津淸流)라 하며 지리산 10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섬진강은 지명유래에서 보더라도 왜구의 침탈로 몸살을 앓았던 곳이다. 이 때 섬진강, 지리산 자락의 선비들은 조국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자기 정체성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한 대표적인 선비들로는 피아골 입구에서 구례 방향으로 3킬로미터 지점의 섬진강가, 왕시루봉 능선이 마지막 자락을 흘러내린 곳에 의병들의 무덤이 말해준다. 이 곳 석주관에는 정유재란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싸우다 순절한 왕득인, 왕의성,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과 구례 현감 이원춘의 위폐를 모신 칠의단이 있다.

17번 국도로 섬진강을 따라 간다. 우측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몰입하다 좌로 고개를 돌리면 석주관이 있다. 오늘의 선비정신은 무엇일까?

왕시루봉은 섬진강을 젖줄삼아 말없이 자양분을 나르고 있다. 백두대간을 적시며 더 높은 곳의 영산 백두산으로 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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