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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9. 젊은이가 먼저 마시는 세주(歲酒)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9. 젊은이가 먼저 마시는 세주(歲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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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1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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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주를 마시는 모임을 그린 풍속화가 한 점 있다. 1912년 정월 초하루 밤의 모임을 그린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로 장승업의 제자이자 조선의 마지막 화원인 안중식(1861~1919)의 그림이다. 탑원(塔園)이라 불린 오세창의 집에 나라를 잃은 설움을 달래기 위해 모였다는 설도 있지만, 그림의 제목에 ‘도소(屠蘇)’가 들어가는 것을 보면 새해맞이 술인 도소주를 마시는 모임을 그린 것이 분명하다. 저 멀리 원각사탑을 흐릿하게 그려 넣고 뿌연 밤안개에 주변을 담그고 누각에 모인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 당대의 상황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흰 술병과 술잔이 놓인 탁자를 가운데 두고 차례로 돌아가며 ‘도소주’를 마시고 삿한 것을 물리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어떤 다짐을 했을지 그 마음을 더듬게 하는 명작이다.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간송미술관 소장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간송미술관 소장

도소주는 후한(後漢)시대 명의인 화타 혹은 당나라의 의학자 손사막이 부정한 기운을 피할 수 있도록 처방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약주로 초백주(椒柏酒)와 함께 새해에 마시는 술인 세주(歲酒)이다. 조선의 후기 학자 조재삼(1808~1866)은 『송남잡지(松南雜識)』에 “도소주의 ‘도’는 귀신의 기를 발라 버리고, ‘소’는 사람의 혼을 각성시킨다”라고 하였는데, 설날 도소주를 마셔 귀신을 물리치고 사람의 혼을 깨어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도소주의 ‘도(屠)는 잡다’라는 뜻이고 ‘소(蘇)는 사귀(邪鬼)의 이름’이니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술’이다. 또한, 도소주(屠蘇酒)의 한자를 해체해 의미를 살펴보면 죽은(尸) 자(者)를 위하여 나물(菜)과 생선(魚)과 밥(禾)을 차례상에 올려놓았다가 마시는 술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묵은해를 보내며 새해맞이 풍속으로 집집마다 정성껏 빚은 가양주(家釀酒 집에서 담근 술)를 차례주로 올리고 액땜으로 마신 의미를 지닌 술이다.

『세시잡영』 도소주
『세시잡영』 도소주

세주 역시 각 집안이 가진 전통과 특색이 담긴 술이다. 집안마다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법이 더해졌기 때문에 잘 담근 술은 집안의 자랑거리가 되곤 했다. 예로부터 우리 지역은 기름진 평야지대와 서해를 끼고 있어 전통적으로 먹거리가 풍부했고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가양주 형태의 토속주가 발달한 곳으로 조선의 3대 명주 중 이강주와 죽력고의 산지였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흉년이 들어 곡식이 부족해 금주령이 내려지게 되면 술 빚는 것 또한 엄격하게 단속했다. 법이 무섭기도 했지만 먹을 양식도 없는 민가에서는 세주를 담글 엄두도 못 냈다. 대신 약재 주머니를 우물에 담갔다가 끓여 식힌 물을 술잔에 담아 ‘도소주!’라고 외치고 마시며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유한 양반집에서는 밀주(密酒)를 담가 명절마다 먹기도 했던 것 같다.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1741~1793)가 세시풍속을 적은 『세시잡영(歲時雜詠)』에 “관가의 금주령이 두려워, 감히 도소주를 담그지 못하네. 백성들이 어찌 알겠는가, 큰 항아리에 청주가 넘치는 줄을”이라고 풍자한 것을 보면 당시의 폐단을 엿볼 수 있다.

조선의 명의 허준(1593~1615)은 도소주를 마시는 것을 ‘도소음(屠蘇飮)’이라 하며 “백출 1.8냥, 대황, 길경, 감초, 천초, 계심 각 1.5냥, 호장근 1.2냥, 천오 6돈 이 약들을 썰어 빨간 주머니에 넣어 12월 그믐에 우물 속에 담갔다가 정월 초하루 새벽에 꺼낸다. 이것을 청주 2병에 넣어 몇 번 끓어오르게 달이고 동쪽을 보며 마신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1잔씩 마시고, 찌꺼기는 다시 우물에 담가 두고 그 물을 마신다”고 『동의보감』에 기록했다. 약재 성분이 담긴 우물을 마을 사람들이 건강하게 나누고자 했던 마음이 귀하다. 도소주에 비하여 초백주의 제조법은 간단하다. 서유구(1764-1845)가 쓴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 의하면 섣달 그믐날 후추 7알과 동쪽으로 뻗은 잣잎 7개를 따서 술에 넣으면 된다고 한다. 술 빚을 때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가지로 술을 저으라는 미신이 있듯이, 동쪽으로 뻗은 잣잎은 신성한 기운을 담은 것으로 보았다.

『견한잡록』 도소주
『견한잡록』 도소주

기존의 술 마시는 예법과 달리 새해에 마시는 술은 젊은이부터 먼저 마신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초하룻날 집안이 함께 모여 차례로 세배하고, 나이 적은 사람부터 이 술을 마신다.”고 기록한다. 조선 선조 때 우의정을 지낸 문인 심수경(1567~1608)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서는 “설날 아침에 도소주를 마시는 것이 옛 풍습이다. 젊은이가 먼저 마시고 노인이 나중에 마신다. 지금 풍속은 설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사람을 만나면 그 이름을 불러서 그 사람이 대답하면 ‘나의 허술한 것을 사가라’라고 하는데, 이것은 자기의 병을 파는 것으로 재앙을 면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도소주 재현모습 /사진제공=한국전통주연구소
도소주 재현모습 /사진제공=한국전통주연구소

이런 풍습은 도소주와 같이 전해 온 중국의 오랜 풍속으로, 후한시대 동훈(董勛)이 지은 『문예속(問禮俗)』에 “젊은 사람은 한 해를 얻으니 먼저 마시고, 노인은 세월을 잃으니 뒤에 마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도소주를 마시는 순서에 대한 관습은 새해 나이 들어감을 쓸쓸해하며 읊은 여러 시에서 찾을 수 있다. 신정(1628~1687)의 『분애유고(汾厓遺稿)』에서 “도소주를 제일 나중에 마신다고 한탄하지 말게나, 이 몸도 역시 일찍이 소년이었다네”라고 한 것이나 임상원(1638~1697)이 『염헌집(恬軒集)』에 “도소주를 마실 때에 내 나이 많아졌음을 깨달았네”라고 한 시구가 그렇다.

이제는 집집마다 세주를 만들던 풍습도 많이 사라지고 전통주를 만드는 곳에서도 세주를 구하기 어렵다. 오랜 세시풍속으로 내려오는 풍습인 세주를 우리 지역에 있는 전통주 양조장과 술테마 박물관에서 계승하고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돌아오는 설에 세주를 빚기 어렵게 되면 차례주를 음복할 때 젊은 나이 순서에 따라 ‘도소주!’라 외치며 삿한 기운을 쫓고 모두가 내내 건강하기를 기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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