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6-27 00:00 (목)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과 일본군 위안부의 인권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과 일본군 위안부의 인권
  • 기고
  • 승인 2019.01.24 19: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폴란드 아우슈비츠

 

[주제 다가서기]

매년 1월 27일은 홀로코스트로 학살당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2005년 11월 1일 국제 연합 총회에서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이는 1945년 1월 27일에 소련의 붉은 군대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를 해방시켰기 때문에 정해진 날짜다.

지난 해 10월 30일 우리나라 대법원에서 강제징용에 대해 “배상청구권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징용피해자에 대한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판결 당일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는 의견을 냈고, 그 다음 날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은 “100% 한국 측에 책임을 두고 생각할 문제”라고 발표하였다.

역사적 과오에 대한 책임을 대하는 일본과 독일 정부의 상반된 모습은 지난 수 십 년 간 조금도 변화된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까지 기억하고 우리 후손들에게도 징용피해자와 위안부와 소녀상에 대한 이야기를 어떠한 훼손 없이 남겨야 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주제 관련 신문기사]

△ 전북일보 2018년 11월 23일 고노 담화와 화해치유재단

△ 한국경제 2018년 11월 29일 아이히만 재판을 회고하며

△ 전북일보 2018년 8월 10일 증언과 기록

[신문 읽기]

<읽기자료1> 고노 담화와 화해치유재단

1993년 8월,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를 발표한 사람은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하여 담화 이름은 ‘고노담화’가 됐다. 그는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발표하는 담화에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사과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더했다.

고노담화가 다시 부상한 것은 지난 2014년, 아베 정부가 ‘고노담화 검증보고서’를 발표하면서다. 표면적으로는 고노담화를 유지하는 입장을 취했지만 담화의 취지를 사실상 파기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숨겨져 있었다. 물론 이 덕분에(?) 고노담화의 의미와 가치는 훼손되고 부정됐다.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결정했다. 재단 출범 2년 4개월만이다. 화해치유재단은 박근혜정부 시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정부의 합의에 따라 2016년 7월 일본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을 바탕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시민단체는 ‘피해자가 빠진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해산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해산은 출범당시부터 예상됐던 결과인 셈이다. 사실 이 합의 내용은 재단 설립이 전부가 아니다. ‘국제 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호비판 자제’나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 같은 내용이 더 있다. 그러나 합의의 핵심이랄 수 있는 재단 해산은 한일간 합의 효력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해산 결정에 합의 자체를 파기한다는 표현을 담지 않았지만 외교적 분쟁과 갈등이 예고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예상대로 일본 정부가 즉각 반발에 나섰다. 일본 외무성은 주일 한국 대사를 불러 강력하게 항의하는가하면 아베 총리는 ‘한국은 국제사회 일원으로 책임 있는 대응을 하기 바란다’며 ‘합의를 지키라’고 대응하고 있다. 국제법까지 운운하는 형국이다.

이쯤되니 이 합의가 갖는 효력의 범위가 궁금해진다. 법적 효력을 갖는 협약도 아닌데다 정작 중심에 있어야 할 위안부 피해자들이 배제된 합의의 효력은 어디까지일까.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1993년 고노담화를 발표한 사람은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그 고노담화의 의미를 부정하는 검증보고서를 발표한 아베 정부의 외무상은 고노 다로, 고노 요헤이 장관의 아들이다. 시대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극명하게 갈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역사인식. 자칫 진전된 것처럼 보이는 한일 관계의 현실이 새삼 놀랍다. <출처 : 전북일보 2018-11-23>

<읽기자료 2> 아이히만 재판을 회고하며

박형남 판사가 쓴 <재판으로 본 세계사>에 따르면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당원으로 대량학살을 위한 유대인 운송 실무책임자였다. 그는 패전 후 거짓 신분으로 떠돌다가 아르헨티나로 도피해 장기간 평화롭게 거주했다. 이스라엘은 1960년 요원들을 파견해 아이히만을 납치했다. 안가에서 수일간 신문받고 즉각 처형될지,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을지 선택에 직면한 아이히만은 재판을 받겠다는 진술서에 서명했다. 마침 아르헨티나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러 이스라엘 대표단이 방문했고 마취된 아이히만이 그 비행기에 실려 밀반출됐다. 새로 건국한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의 주요 책임자를 스스로 재판함으로써 국제적 관심을 환기하고 국가적 정의감도 회복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는 이스라엘 요원들이 자국에 불법 잠입해서 자국 시민을 납치해간 행위를 주권침해로 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스라엘은 납치자들이 정부 요원이 아니라 개인들이라고 변명했지만 안보리는 주권침해를 인정했다. 그 후 양국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하는 외교적 해결에 이르렀다.

1961년 시작된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언급함으로써 우리에게 반성의 기회를 제공했다. 악인은 처음부터 악의를 가지고 악행으로 나아간다고 보는 선악이분법은 어린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만큼 간단하고 편안하다. 한편 우리 주변의 선량한 이웃도 전체주의적 체제나 집단 이데올로기 하에서 맹목적 일상을 통해 거대한 악에 동참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어렵고 불편하다. 범죄자를 악마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자신은 그들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며 안심한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도 별 죄의식 없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요구한다.

이 재판은 일반인들에게는 정의가 실현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법리적으로 그렇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범죄 당시 아이히만은 독일인이었고 피해자인 유대인들조차 대부분 독일, 헝가리, 폴란드 등 유럽국가 시민이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범행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다. 외국인이 외국인을 상대로 국외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후에 성립된 국가에 관할권이 있는지, 사후 제정 형사법규로 소급 처벌이 가능한지, 체포 송환 과정의 위법성은 어떤 영향이 있는지, 반대신문이 제한된 증거가 허용될지 등 많은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 재판에 대해 독일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재판의 역사적 정당성에 대해 국제사회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 재판이 결과적으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전세계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역사의 발전에 기여하기까지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의 노력 그리고 세계 각국의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의 공감이 있었다.

아이히만 재판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누락되고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준 것처럼 일본의 전쟁범죄나 그로부터 파생된 사건에 대해서도 도쿄 전범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주는 절차나 과정이 필요하다. 국가의 명이라서 또는 자신이 맡은 책무라서 무비판적으로 수행한 것이라도 전쟁범죄에 관여하고 기여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별 국가나 민족의 복수나 한풀이에 멈춰서는 안 되며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차원까지 끌어올려져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해 우리 정부와 국민은 국제적 감각을 가지고 지속적 장기적으로 세계 시민과 교류해야 한다. 일본이 전쟁범죄를 반성하고 진정성 있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국제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첫 단추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이것은 일본의 헌법정신에도 부합한다. 이런 공감대가 확고하게 형성된다면 일본이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지만,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다면 판결의 해외집행에 어려움을 겪거나 투자자국가 중재 반격 등을 당할 수도 있다. 진정성 있게 전쟁범죄를 반성하는 것은 독일이 현대 사회의 존경받는 지도자로 부상하는 디딤돌이 됐다. <출처 : 한국경제 2018-11-29>

<읽기자료 3> 증언과 기록

염천에 뜨거운 책을 만났다. 일본인 포토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가 취재한 일본군 위안부 20명 증언록 <기억하겠습니다>. 이토 다카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가 되었던 피해 여성들을 찾아 다니며 집중 취재해온 작가다.

1991년 10월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를 처음 만난 이후 시작된 그의 위안부 증언 기록 작업은 놀랍니다. 아시아태평양 각국을 찾아다니며 취재한 전쟁 피해자는 800여명. 이중 90여명이 일본군 위안부다. 그것도 남한과 북한의 피해자를 모두 아우른다. 이 책에 소개된 20명 위안부 할머니 중 14명이 북한의 할머니들이다. 이귀분 김영실 리상옥 김대일 곽금녀 리계월 리복녀 리경생 유선옥 정옥순 김영숙 박영심. 그동안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탓인지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더 처절하다.

2015년 12월 한국과 일본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했다. 이른바 ‘2015합의’다.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지급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한국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고 피해자 보상에 나섰지만 피해자 지원 단체와 소통도 없이 한국정부의 일방적인 ‘합의’는 절차상의 문제 뿐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 쌓아올린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을 후퇴시켰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할머니들의 의사조차 무시됐던 이 합의를 이토 다카시 역시 무리하게 진행된 ‘정치적 결탁’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왜 자신의 조국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이처럼 낱낱이 파헤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일까. 답은 명쾌하다.

‘일본의 중대한 국가범죄를 분명하게 규명하는 것이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책에 실린 20명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이다. 지난 7월 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가 101세로 별세해 남한의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7명으로 줄었다. 역사의 증언자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미궁이다. 피해의 기억조차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은 그래서 더 두렵다.

‘이렇게 오랫동안 성노예 피해자 문제가 지속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이토 다카시의 귀한 기록을 우리도 만날 수 있다. ‘식민지 지배 침략의 피해자 증언을 기록하는 모임’의 웹사이트(http://artic.or.jp)에서다. 기억해야 할 역사가 거기 있다. <출처 : 전북일보 2018-08-10>

[생각 열기]

활동 1. <읽기자료 1>을 읽고, 1993년 ‘고노담화’의 내용을 찾아 정리하시오.

활동 2. <읽기자료 1>을 읽고,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시민단체가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한 이유를 찾아 쓰시오.

활동 3. <읽기자료 1>를 읽고, 1993년 ‘고노담화’와 2014년 ‘고노담화 검증보고서’ 간의 관계를 찾아 쓰시오.

활동 4. <읽기자료 2>를 읽고,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기 까지의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시오.

활동 5. <읽기자료 2>를 읽고, 아이히만의 재판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제기될만한 사항을 찾아 쓰시오.

활동 6. <읽기자료 2>를 읽고, 글쓴이가 주장하는 내용을 두 문장 내외로 정리하시오.

활동 7. <읽기자료 3>을 읽고, 이토 다카시가 일본군 위안부 20명의 증언록을 기록하는 이유를 찾아 쓰시오.

[생각 키우기]

△ 홀로코스트[Holocaust]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총칭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한다. 특히 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스에 의해 학살되었는데,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 배타성, 광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20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출처 : 두산백과>

△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

매년 1월 27일에 홀로코스트로 학살당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2005년 11월 1일 국제 연합 총회에서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 화해치유재단

2015년 12월 28일 당시 박근혜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한 뒤 7개월 뒤인 2016년 7월 설립된 여성가족부 소관의 재단법인이다. 그러다 2017년 12월 재단이 졸속으로 설립됐다는 내용 등이 담긴 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재단 이사진 대부분이 사퇴하면서 재단 기능은 전면 중단됐다. 그리고 재단 소관부처인 여성가족부가 2018년 11월 21일 재단사업 종료 결정 방침을 밝힘에 따라, 발족 2년 4개월 만에 해산 절차에 들어가게 됐다.

△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박물관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스에 희생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박물관으로, 원래는 1953년 야드 바솀 (Yad Vashem) 기념관으로 건립되었다. 야드 바솀은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나치스에 학살된 600만 유대인의 위령탑과 희생자들의 유물 및 사진, 생존자들의 증언 자료, 희생자들이 수용소 안에서 그린 그림 등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원뿔꼴인 ‘이름의 홀(Hall of Names)’ 내부 벽면은 무수한 희생자들의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이 박물관은 세계 각국에 있는 이들 홀로코스트 관련 박물관과 추모관들의 본부 역할을 한다.<출처: 두산백과>

[생각 더하기]

활동1. 다음 글을 읽고, 홀로코스트에 대하여 자신의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 400자 내외로 쓰시오.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

오드리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 메시지 (2018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 이후로 아우슈비츠를 반대하거나 반박할 만한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글에서, 홀로코스트는 과거 시제로 존재할 수 없었다.” 이것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의 끔찍한 말입니다. 나치 공포 이후 70년이 지난 후에도, 이 역사를 전달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은 유럽 평의회를 따라, 1945년에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해방시킨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 기념일로 제정했습니다. 이 결정에 따라 유엔은 유대인 대학살인 쇼아의 특수한 성격과 그 보편적인 범위를 단언했습니다. 이 역사의 전승과 나치의 범죄로 인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는 평화에 대한 국가의 약속을 강화하라는 요구입니다.(중략)

2018년 기념일의 주제는 “홀로코스트 추모와 교육:우리가 공유하는 책임”입니다. 우리는 모두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정치적 행위자, 전문가, 역사학자, 예술가, 교육자 그리고 시민으로서. 우리는 망각, 부인, 역사 수정주의, 범죄의 상대성 그리고 증오를 키우는 고정관념의 귀환에 반대하는 의식을 강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함으로써 사실에 대한 조작에 반대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반유대주의와 맞서 싸우는 것이 이 투쟁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홀로코스트와 학살 교육에 대한 유네스코 글로벌 프로그램의 정신이고, 올해 유네스코 본부에서 진행될 다음 행사들에 담긴 정신입니다. (출처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홈페이지)

활동2.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책,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찾아 간단히 정리해봅시다.

활동3.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홀로코스트를 비교한 뒤 공통점과 차이점을 쓰고 그렇게 생각한 까닭을 말해 봅시다.

(예시)

공통점-인권을 유린한 반인륜적인 행위이다.

차이점-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지속적인 심판과 사후 처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회피와 무책임으로 전범 재판이나 보상 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제작=김주연(전주인후초등학교 교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