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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 600년
광한루 600년
  • 김원용
  • 승인 2019.01.29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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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廣寒樓)는 춘향전의 배경지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역사는 훨씬 깊다. 광한루는 황희 정승이 남원에 유배됐을 때인 1419년 축조한 것으로, 본래는 광통루(廣通樓)로 불렀다. 현재의 광한루는 전라관찰사였던 정인지가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를 본 따‘광한루’로 부른 데서 유래했다.

광한루가 600년간 유지되면서 사랑을 받아온 배경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뛰어난 경관이 바탕이 됐다.‘지세가 높고 평평하게 넓은데, 멀리로는 사사이 속세가 있으며 산 둘레에는 하늘에 맞닿아 있어 흰구름이 반쯤 걸려있고, 앞에는 골짜기 물이 명주베를 펼쳐놓은 것처럼 흐르고, 그 흐르는 물에서 섬린(纖鱗, 작은 물고기)을 보노라니 가히 아름다운 곳이라 부를 만하다.’.황희의 아들로, 영의정을 지낸 황수신이「광한루기」(1458)에서 묘사한 광한루의 모습이다. 광한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광한루는 또 황희를 비롯하여 정철, 김종직, 신흠, 정약용 등 유명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아 시문을 남겼다. 여기에 한국의 대표적 고전소설인 춘향전의 배경지라는 점이 대중적 명소로 자리 잡게 했다. 기존의 광한루 안에 춘향각·월매집·춘향관 등이 만들어진 것도‘춘향’의 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오늘날 광한루의 진정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문화재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광한루원이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과정에서 관아누각으로의 장소성이 크게 상실됐다는 측면에서다. 특히 춘향을 테마로 한 시설들이 광한루의 관광자원화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지만, 테마 위주의 과도한 시설 배치가 광한루의 본질적 가치와 상치된다는 것이다. 정작 보물로 지정된 광한루는 다른 이질적 시설들에 의해 가려지면서다. 광한루의 고유성과 역사성을 확보하기 위해 광한루원에 위치한 춘향시설의 분리 혹은 이전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남원시가 올‘광한루 600주년 기념의 해’로 지정하고, 여러 기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일도 좋지만, 광한루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장기적 안목의 사업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광한루 600주년이 그저 이벤트성 행사만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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