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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증언과 역사
할머니들의 증언과 역사
  • 김은정
  • 승인 2019.01.31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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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주 할머니는 취재도중 테이프 녹음기를 집어 던지기도 했으며 심미자 할머니는 체험을 이야기 하다 때때로 내 생각을 물었다. 정옥순 할머니는 이야기하다가 의자에서 일어나 조금씩 나에게 다가왔다. 눈앞에 있던 내가 순간 일본군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1991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인터뷰해온 일본 포토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는 자신의 책에서 인터뷰 현장의 고통을 소개하며 ‘이처럼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취재는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그가 그동안 만난 위안부 할머니들은 800여명. 인터뷰를 했던 할머니 대부분은 세상을 떠났으나 가해의 역사를 외면하는 자신의 모국을 부끄러워하며 고통스러운 작업을 지켜온 덕분에 할머니들의 증언이 살아남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8일, 또 한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김복동 할머니. 1992년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임을 세상에 알렸던 할머니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고 진정한 사과를 받기 위한 일에 여생을 바쳤다.

빈 세계인권대회, 유엔 인권위원회 국제전범 재판 등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인권을 위한 국제회의와 모임을 찾아다니며 증언했던 할머니의 일상은 치열했다. 대장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여하며 일본 정부를 향한 날선 비판으로 각성을 촉구했다.

“자기들이 한 짓이 아니라니 증거가 살아 있는데 왜 증거가 없다고 하는가. 내가 증거다.”

지난해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도 그가 미 의회 공개청문회에서 증언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열네 살에 위안부로 끌려가 8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기구한 삶을 살아야했던 할머니의 빈소에 조문객 행렬이 이어지고 엊그제 열린 1372번째 수요집회에는 평소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단다.

할머니가 남긴 목소리가 있다. “일본은 내가 죽기만을 기다리겠지만 나는 죽지 않을 거야. 내가 죽더라도 내 문제를 함께 하는 젊은이들이 내 문제를 기억하고 함께 할 거야.”

그의 바람을 수많은 젊은이들이 가슴으로 안은 모양이다. 영상으로 본 수요집회 현장에는 젊은 참가자들이 유난히 많다. 그래서인가. 여생을 인권운동으로 보냈던 할머니의 고단했던 삶이 더 빛나 보인다.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는 240명. 생존자는 이제 23명이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들의 증언은 아직 제자리에 놓이지 않았다.

2월 1일에는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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