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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79)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5
[불멸의 백제] (279)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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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1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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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이제 기회가 왔어.”

내신좌평 연임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사택부를 보았다.

“이보게, 방령. 그 이치를 아는가?”

“무슨 말씀이오?”

사택부가 찌푸린 얼굴로 연임자를 보았다. 밤 해시(10시)가 지난 시간이어서 주위는 조용하다. 이곳은 사비도성의 서방(西方)에 위치한 내신좌평 연임자의 저택 안, 마루방 안에는 둘이 마주 보고 앉아있다. 연임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거대한 전각도 대들보 한 개만 어긋나면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린다네.”

연임자의 시선을 받은 사택부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연임자는 내신좌평으로 관리들의 인사권을 쥔 실세다. 다섯 명 좌평 중에서 병관좌평 성충 다음 서열이지만 왕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전내부의 수장으로 국정을 장악하고 있다. 그 연임자가 신라 김춘추로부터 10여 년간 뇌물을 받아온 반역자인 것이다. 연임자는 대성8족 중 하나인 연(燕)씨로 한때 집안이 융성했지만 무왕 때부터 몰락했다가 연임자가 가문을 일으켰다. 의자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연임자가 말을 이었다.

“방령, 이번에 신라군이 왔을 때 지원군을 늦추기만 하면 되네.”

“늦추기만 하면 되겠소?”

“그래, 왕이 동방군(東方軍)을 후위군으로 둔다는 것은 그대를 믿지 못한다는 말이나 같지 않은가?”

“그건 그렇소.”

쓴웃음을 지은 사택부가 말을 이었다.

“성충이가 왕에게 말했을 것이오. 사택부는 믿을만하지 않다고.”

“그러니까 이틀만 늦추면 되네.”

연임자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앞에 앉은 사택부는 45세, 역시 대성8족 중 하나였지만 신진 세력인 성충, 윤충, 의직, 흥수 등에게 밀려 변방으로 떠돌다가 연임자의 추천으로 겨우 동방방령이 되었다. 사택부의 직위는 제2품인 달솔, 동방은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방으로 상비군이 4만 가깝게 된다. 그래서 이번 전쟁에 3만을 추려 계백군의 후위군 역할을 맡은 것이다.

“내가 계백보다 나이나 경륜도 많고 전장에 많이 나갔소. 더구나…….”

그 뒷말은 안 들어도 안다. 사(沙)씨 가문은 대성8족 중 으뜸 가문인 것이다. 무왕(武王)에 이어서 의자왕대까지 왕권이 강화되면서 대성8족은 견제를 받았다. 대신 신흥 세력이 중용되어 백제국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연임자가 말했다.

“왕은 자만하고 있어. 당군(唐軍)쯤은 백강이나 탄현에서 격파하고 김유신군은 황산벌에서 단숨에 깨뜨릴 계획이야. 하지만 내가 그러지 못하게 할 거네.”

“어떻게 말씀이오?”

“좌평 흥수, 성충을 역적으로 몰아 일단 입을 막을 작정이야.”

놀란 사택부를 향해 연임자가 빙그레 웃었다.

“신라 김춘추가 뇌물을 보냈다는 증거를 보이면 왕은 어쩔 수 없이 둘을 구금하겠지.”

“증거가 있습니까?”

“신라에서 보내온 보물과 편지가 있어.”

연임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내일 신라 첩자를 잡아 왕께 데려갈 거네. 물론 그 첩자는 목숨을 걸고 온 신라 화랑이야.”

“과연.”

“왕은 혼란에 빠지겠지.”

“좌평, 신라가 도성을 차지하면 내 위치는 어떻게 되겠소?”

“그대는 좌평이 되어서 나와 함께 백제를 다스리기로 하지.”

“김춘추왕과 약조가 되었습니까?”

“몇 번이나 했어.”

정색한 연임자가 사택부를 보았다.

“벌써 10년이 넘었네. 이제 김춘추공은 신라왕이 되셨고 우리도 가문을 다시 일으킬 때네.”

“가문만 일어나면 누가 왕이 되어도 좋소.”

마침내 마음을 굳힌 사택부가 똑바로 연임자를 보았다. 반역은 이렇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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