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10-21 20:10 (월)
살인마와 영웅
살인마와 영웅
  • 위병기
  • 승인 2019.02.11 19: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여럿을 죽이면 살인마가 되며, 수천·수만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고 한다. 감히 입에 담기도 참담하지만 전쟁 영웅의 경우 때로는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단 한사람을 죽였지만 암살범의 굴레를 영원히 지는 경우도 있다. 로마의 카이사르, 미국의 링컨, 인도의 간디 암살범이 바로 그들이다. TV로 생중계되던 시절에 자행된 미국의 케네디, 이집트의 사다트, 필리핀의 베니그노 아키노 암살 장면은 인류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겼다.

우리 역사도 마찬가지다. 소석(이철승)의 대선배였던 고하 송진우 선생은 1945년 끝자락에 한현우 일당의 총탄세례를 받고 56세의 나이에 절명했다. 이후 여운형, 장덕수, 김구 등이 잇따라 암살당하는 비운의 현대사가 진행된다. 이승만 배후설이 나돌았지만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사직한 청와대 탁현민 행정관 같은 재주를 가진 이가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할 때도 있었다. 바로 전병민씨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의 외곽조직 기획실장을 맡아 홍보 전략 수립에 기여한 공신이었고, 앞서 1987년 대선때 노태우 캠프의 선거 전략에도 기여했다.‘전두환 친구’ 노태우의 이미지를 중화시키기 위한 ‘보통사람 노태우’ 슬로건과 당선 뒤의 원탁회의 주재, 007가방 직접 휴대 등이 그가 속한 팀 ‘한가람기획단’에서 짜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YS 집권 후 하나회 숙청, 공직자 재산공개 등의 개혁 과제를 가다듬던 그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당당히 입성했으나 연좌제에 걸렸다.

동아일보가 “전씨의 장인(한현우)이 해방정국의 정객 고하 송진우의 암살범”이라는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송진우는 동아일보의 주필과 사장을 지냈기에 당연히 1면 톱 기사였다.

장인이 고하 송진우 암살범 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병민은 낙마했다. 당시만 해도 연좌제의 그늘이 있었다.많은 이를 죽이고 전쟁 영웅이 된 사람과 달리 무장하지 않은 양민을 학살한 역사의 죄인들도 많다. 캄푸치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이 자국민 200만명 이상을 학살한게 대표적이다. 그러고도 크메르 루주 지도부는 “인구의 정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변명한다.

요즘 광주 5·18과 관련해 자한당 일부 의원들의 망언 파문이 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국민들의 아픈 상처를 또다시 후벼 파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북한 개입설에 그치지 않고 전두환 영웅론까지 주장하고 나서자 관련단체나 민주당 등은 ‘영웅이 아니라 살인마’라며 분기탱천해 있다. 이번 파문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는지, 아니면 학살에 대해서는 끝까지 단죄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묻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