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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84) 15장 황산벌 3
[불멸의 백제] (284) 15장 황산벌 3
  • 기고
  • 승인 2019.02.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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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계덕, 너는 지금 곧장 도성을 빠져나가 달솔께 가라.”

한성이 낮게 말했다.

“연임자가 날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장덕, 같이 도망치십시다.”

한성과 함께 전령으로 달려온 계덕 천용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은 도성안 대왕청 근처의 대기소 앞이다. 그때 한성이 꾸짖듯 말했다.

“이놈아! 기회를 놓치면 달솔께 상황도 전해드리지 못하고 다 죽는다!”

“예, 장덕.”

천용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한성을 보더니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장덕, 저승에서 만납시다.”

“기어코 살아서 달솔께 도성 분위기를 전해라. 달솔이 도성에 오시면 죽는다.”

“예, 갑니다.”

몸을 돌린 천용의 등에 대고 한성이 말했다.

“저승에서 보자.”

그 시간에 계백에게 흥수가 말했다.

“대왕은 그대 뒤를 사택부터 동방군 3만으로 지원해주겠다고 했는데 잘못된 계책이야.”

“왜 그렇습니까?”

“사택부는 이미 연임자의 심복이 되어 있어. 동방군 3만은 그대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네.”

“대왕은 왜 사택부를 앞세우지 않으십니까?”

그때 흥수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사택부도 대성 8족 아닌가? 그자도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

“저런.”

계백이 한숨을 쉬었다.

“좌평, 대왕의 총기가 흐려지셨소.”

“연임자의 농간에 넘어가 대성 8족을 하나씩 요직에 등용한 것이지. 이젠 우리가 밀려났네.”

의자가 중용(重用)했던 성충, 윤충, 흥수, 의직 등이 모함을 받아 유배되거나 죽었지만 그렇다고 대성 8족을 믿는 것도 아니다. 오직 연임자 하나만 믿고 있다. 흥수가 말을 이었다.

“연임자는 김춘추와 수년전부터 내통하고 있었어. 우리는 최근에야 알았지만 이미 늦었어.”

“방심하셨소.”

“내가 선대(先代)왕께 죽을 죄를 지었네.”

“좌평.”

계백이 부르자 흥수가 고개를 들었다.

“백제가 망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신라에게 철저히 유린당하겠지.”

시선을 돌린 흥수가 말을 이었다.

“김춘추는 지금까지 쌓였던 한을 풀 것이네.”

구례성의 청 안이다. 둘이 마주보고 앉아 있을 뿐 청은 텅 비었다. 오후 유시(6시) 무렵, 내일 아침이면 북진한다. 그때 흥수의 말이 이어졌다.

“백제땅은 모두 신라 귀족의 장원이 되고 백제인은 노예가 되겠지. 아마 건장한 남녀, 아이까지 수십만은 당으로 노예가 되어 팔려 나갈 것이네.”

“……”

“백제의 유적은 남김없이 부숴버리고 불에 태워서 흔적을 찾지 못하도록 하겠지.”

“……”

“아마 사비도성이 함락되고 왕가(王家)가 멸망하면 백제 주민의 3할 내지 4할은 이곳 구례성을 통해 왜국으로 빠져나갈 것이네.”

흥수가 길게 숨을 뱉았다.

“왜국이 제2의 백제가 되겠지만 대백제의 이름은 사라질 것이네.”

“좌평, 소인이 백제를 떠난지 3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계백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흥수를 보았다.

“어찌 이렇게 허무하게 국력(國力)이 흔들릴 수가 있습니까?”

“3년쯤 전부터 백제 내부(內部)에서 불길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네.”

흥수가 마침내 눈물을 쏟았다.

“궁중에서 귀신이 나타나 ‘백제는 망한다’는 소리를 지르다 사라졌고 여우가 대왕의 용상에 앉았다가 도망쳤다는 등 소문이 끊이지 않았네. 모두 연임자 일당이 낸 소문인데 그때부터 민심이 흔들리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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