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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85) 15장 황산벌 4
[불멸의 백제] (285) 15장 황산벌 4
  • 기고
  • 승인 2019.02.1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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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계덕 천용이 돌아왔을 때는 깊은 밤이다. 자시(12시) 무렵, 그러나 계백은 내일 출정 준비 때문에 아직 침상에 오르지 않고 있었다. 계백이 청에서 흥수, 윤진 등과 함께 천용을 맞는다. 천용이 두 손을 청 바닥에 짚고 계백을 보았다. 갑옷은 땀과 먼지로 얼룩투성이가 되었고 더러운 얼굴에서 두 눈만 번들거리고 있다.

“달솔, 저 혼자서 도망쳐 나왔소.”

계백이 시선만 주었고 천용이 말을 이었다.

“장덕 한성이 너 혼자라도 살아서 달솔께 달려가 도성에 오시지 못하게 막으라고 했습니다.”

“한성이 죽었느냐?”

“대왕께서 고마미지 성에서 달려간 놈을 만나 내막을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연임자가 달솔을 부르려고 그놈 심복인 사신 한 놈을 장덕과 함께 보낼 것입니다.

“사신은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야.”

듣고 있던 흥수가 말을 받았다.

“한성을 죽이고 그냥 돌아가 달솔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할 거네.”

계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처연해진 얼굴로 흥수를 보았다.

“좌평,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천용이 청 바닥을 짚은 채 짧게 흐느꼈다. 눈을 부릅뜨고 흐느꼈기 때문에 딸꾹질하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부릅뜬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고 있다. 둘러앉은 윤진, 하도리까지 이를 악물고 있다. 이윽고 흥수가 대답했다.

“달솔, 도성으로 들어가면 죽네.”

“그럼, 대왕께서 내가 도성으로 가지 않을 줄도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하성이 보고할 테니까 그대를 역적으로 부르겠지.”

“그럼 김유신 군(軍)을 어떻게 막으시려는 것입니까?”

“동방방령 사택부를 시켜 3만 군사로 가로막겠지. 그것이 차선책 아닌가?”

“사택부는…….”

“연임자와 내통한 사택부는 시간을 끌면서 황산벌로 나가지 않을 것이네.”

“…….”

“김유신군은 무인지경처럼 황산벌을 통과하여 사비도성에 닿겠지.”

흥수의 눈에 가득 고여졌던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그러나 목소리는 또렷했다.

“그것이 연임자와 김춘추의 오랜 기간에 걸친 음모인 것 같네.”

“…….”

“나도 이제야 윤곽이 잡히는구먼.”

흥수가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천정에 누가 있는 것 같은 표정이어서 모두 그쪽을 볼 정도였다.

“아, 선왕(先王)이시여. 이 죄를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망국(亡國)의 죄를 지었습니다. 수백만 백제인이 신라인의 종이 되고 도살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선왕이시여. 제 죄는 백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그때 계백이 어깨를 부풀렸다.

“들어라.”

청안이 조용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다. 계백이 초점이 잡힌 눈으로 윤진부터 하나씩 시선을 맞추고 나서 말했다.

“내일 아침 묘시(6시)에 전군이 북상(北上)한다.”

모두 숨을 죽였고 계백이 말을 이었다.

“황산벌로 달려가 김유신 군(軍)을 막는다.”

“김유신은 황산벌이 비어 있을 줄 알고 있을 것이네.”

흥수가 외면한 채 말했다.

“연임자, 사택부하고도 밀정이 오가고 있을 테니까.”

그때 계백이 윤진에게 물었다.

“황산벌까지 얼마나 걸리겠는가?”

“이틀이요.”

윤진이 뱉듯이 대답하고 웃었다.

“나흘 길이지만 우리는 계백 군(軍)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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