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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열리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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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1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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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우리는 한 생을 살아가면서 비단보자기에 썩어가는 생선을 쌀 것인가? 무명보자기에 향기나는 허브를 쌀 것인가?

인류가 살고 있는 푸른 별의 오대양 육대주가 수억만 년 전 보이지 않는 내부 핵의 열에너지에 의해 맨틀 지각 변동으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지상의 만물이 고요한 함묵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경이롭게 나타내고 있다. 인간의 행위도 보이지 않는 마음이 온갖 동작을 짓게 하고 그 움직임에 따라 얼굴과 몸 매무새가 변형되어 그를 보고 그 사람의 인품을 가늠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삼라만상의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기저(基底)를 궁구하고 인류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인 영혼의 정수를 조명하고자 한다. 이에 BC 6세기경에 활동한 중국 제자백가 가운데 하나인 도가의 창시자인 노자의 《老子道德經》에서 도(道)는 본질적이고 덕(德)은 그 작용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노자 사상의 근본은 도에 있다. 노자가 말하는 도는 유교(儒敎)의 도덕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제1장에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라 했다. 노자가 생각하는 도는 천지가 있기 이전부터 있는 것으로 빈〔虛〕것이며 무(無)인 것이며 존재 아닌 존재이기 때문에 무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그것은 크고 영원한 것이다. 그러니 ‘도라는 말은 실은 도의 이름이 아니다.’라고 했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그의 깨달음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에 이르러 이미 현대 천문학의 성과인 우주 빅뱅의 경이로움을 훤히 꿰뚫고 있었으며, 후세에 무어라 전언할 말을 찾던 중 그것을 도(道)라 일컬었으리라 본다. 그러나 스스로가 너무나 어줍잖은 표현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되어, 마치 도공이 도자기를 한 가마 빚어 놓고 꺼내 보니 자기 맘에 충족치 못하여 하나도 남김없이 두들겨 깨버리듯 그를 비상도(非常道)라 부정해버린 것이라 생각된다.
그는 또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다. 이름 없는 것은 도를 가리킨 것이고, 이름 있는 것은 하늘과 땅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천지가 아직 생기기 전에 이름 없는 시원(始元), 즉 도(道)가 먼저 존재하여 그 도에서 천지라는 유형(有形)한 것이 생기고, 이미 유형하기 때문에 하늘이니 땅이니 하는 이름이 있게 되었으며, 그 형체 있고 이름 있는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임과 동시에 그 사물의 순수성은 이미 때묻어버린 것이므로 비상명(非常名)이라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마치 우리가 어린 아이를 낳아 이름을 붙이지 않을 때의 순수 그 자체의 그대로인 것이다.

이처럼 노자의 학문과 영혼은 얼마나 백지처럼 희디흰 본질의 세계를 갈구하며 향유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우주의 창조 과정을 도→천지→만물, 이렇게 단계적으로 설파했다. 이러한 사상은〈구약성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창조론과 역경(易經)에서 태극(太極)이 ‘양의(兩儀) - 천지(天地)’를 낳았다고 한 학설 등과 비교하면 더욱더 흥미진진하리라 본다. 그래서 그는 상무(常無), 즉 영원한 무(無), 영원히 형용할 수도 감각할 수도 이름 지을 수도 없는 도에서 지극히 미묘한 작용을 보고자하고, 상유(常有) 즉 영원불멸의 존재인 천지에서 천지만물의 귀착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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