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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86) 15장 황산벌 5
[불멸의 백제] (286) 15장 황산벌 5
  • 기고
  • 승인 2019.02.1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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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구례성에 상륙한 계백군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대장군 김품일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김품일은 어젯밤 연임자가 보낸 밀사를 만난 것이다. 오전 사시(10시) 무렵, 신라군은 사비도성을 향해 곧장 진군하는 중이다. 이제 탄현도 군사 한 명 상하지 않고 건넜으니 백제의 왕성인 사비도성까지는 탄탄대로가 뻗어있는 셈이다. 그래서 전군(全軍)의 사기는 충천했다. 군사들의 발걸음에도 그것이 나타나 있다. 이제 사비도성까지는 2백여 리, 이틀이면 닿는다. 당의 총지휘관인 신구도행군도총관 소정방과 7월 13일에 사비성 앞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시간이 넉넉하다. 그때 김유신 오른쪽에서 말을 타고 따르던 김흠춘이 혼잣소리처럼 물었다.

“황산벌은 비어 있겠지요?”

“당연하지요.”

김유신 왼쪽의 김품일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의자가 동방방령 사택부에게 황산벌로 나가라고 지금쯤 지시했을 것이오.”

김유신은 듣기만 했고 김품일이 짧게 웃었다.

“사택부는 그러겠다고 대답은 해놓고 질질 끌 것이오. 휘하의 3만 군사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업자득이지.”

김흠춘이 따라 웃었다.

“의자의 아비 서동이가 대성8족을 일거에 내쫓고 의자가 그 뒤를 따라 신참들을 등용한 대가를 받는 것이지. 백제에 대성8족의 뿌리가 깊은 것을 간과했던 거요.”

의자의 부친 무왕(武王)은 서동(薯童)으로 불리던 청년 시절에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만나 사랑을 했고 백제로 데려왔다. 이것이 신라와 백제에 알려진 서동설화이나 사실은 다르다. 그 내막을 김유신도 알고 김품일, 김흥춘도 아는 것이다. 진평왕은 재위 54년을 했으니 장수를 했다. 진평왕은 딸 김덕만과 선화를 두었는데 김덕만은 선덕여왕이 되었고 선화는 곧 백제 무왕(武王)의 왕비이며 의자의 모친이다. 잠깐 김유신과 김품일, 김흠춘은 입을 다물었다. 진평왕이 선화공주를 백제 무왕의 왕비로 보낸 이유는 신라와의 합병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없었던 진평왕은 선화공주가 무왕의 왕비가 됨으로써 신라와 백제의 통합을 기대했던 것이다. 따라서 선화공주의 아들인 의자가 신라, 백제 양국의 ‘통합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안 의자는 의욕을 부렸지만 신라측 진골 왕족들의 방해에 무산되었다. 진평왕 이후로 신라는 성골(聖骨) 출신의 남자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김덕만을 여왕으로 추대해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 선덕여왕이 죽자 이번에는 사촌 여동생인 김승만(金勝曼)을 진덕여왕으로 추대했다가 어제 마침내 김춘추가 진골 왕족으로 대망의 신라왕이 되었다. 그때 김유신이 입을 열었다.

“계백이 이끌고 온 기마군은 모두 왜군 아닌가?”

“그렇습니다.”

김품일이 대답했다.

“계백이 영주로 있던 왜국에서 추려온 왜병이지요.”

“왜병은 기마전술이나 기마술이 뒤떨어져서 상대가 안 됩니다.”

김흠춘이 웃음 띤 얼굴로 김유신을 보았다.

“아직 아이 수준이지요.”

그때 김유신이 정색하고 말했다.

“계백은 백제의 장수지 왕의 신하가 아니다.”

둘은 입을 다물었고 김유신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을 보았다.

“계백이 지금 북상해 올 것이다.”

김유신의 나이는 이제 66세이니 백전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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