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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88) 15장 황산벌 7
[불멸의 백제] (288) 15장 황산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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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2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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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황산벌이 내려다보이는 3개의 성(城)이 있으니 장동석성(壯洞石城), 웅치산성(熊峙山城), 황령토성(黃嶺土城)이다. 계백은 이 3성을 연결하여 3영(三營)의 전술로 신라군을 맞았다. 신라군을 분산 격파하려는 기세다. 술시(오후 8시) 무렵, 장동석성에 화청, 황령토성에는 윤진을 주장(主將)으로 두고 각각 1500기마군을 배치 시킨 후에 중앙의 웅치산성에는 계백이 흥수와 다께다, 하도리와 함께 2천 기마군으로 입성했다. 각각의 성에는 2백여 명 정도의 보군이 지키고 있었는데 계백의 기마군이 입성하자 반색을 하고 맞았다. 소식이 빨라서 동방방령 사택부가 배신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계백의 기마군을 보더니 죽은 부모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겼다. 사기가 충천해서 기세는 일당백이 되었다.

“신라군은 아직 2백여리 밖입니다.”

전령의 보고를 들은 계백이 말했을 때는 해시(오후 10시)가 되었을 무렵이다. 저녁을 먹고 지친 군사들은 잠이 들었다. 계백이 흥수에게 말을 이었다.

“좌평, 내 처자가 이곳에서 40리(20㎞) 거리의 토성에 와 있소.”

“아, 그렇지.”

흥수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계백을 보았다. 고개를 끄덕인 흥수가 가라앉은 표정으로 계백에게 물었다.

“달솔, 처자를 만나고 오겠는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소.”

“그렇지. 가서 보고 오게.”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작별 인사나 하고 오겠소.”

흥수는 대답하지 않았고 계백이 몸을 돌렸다.

어둠 속을 30여기의 기마군이 서쪽으로 매닫고 있다. 거친 황야였지만 어둠에 익숙한 전마(戰馬)는 거침없이 질주했고 마상의 기수 또한 말과 일체가 되어있다. 이윽고 기마대가 멈춰선 곳은 토성의 마당이다. 어느덧 마당에 횃불이 서너개 켜졌고 저택의 마루에도 등이 걸렸다. 먼저 달려간 첨병이 기별을 넣은 터라 마루에 서 있던 계백의 처 고화가 내려왔다. 놀랍고 반가운 고화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져 있다. 그리고 고화의 뒤를 따라 계백의 딸 선(善)이 내려왔다. 여덟 살, 눈방울이 또렷한 선이 계백을 똑바로 올려다본다.

“늦었다.”

계백이 짧게 말하고는 고화와 선을 양팔로 당겨 안았다. 마당에서 안은 것이다. 둘러섰던 하인, 시녀들은 잠깐 놀랐지만 모두 처연한 표정이 되었다. 계백이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늦었다’는 말이 밤이 깊었다는 말도 되었고 시기가 늦었다는 말도 되었다. 자시(밤 12시)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계백이 양팔에 고화와 선을 감싸 안은 채 마루에 올라 청으로 들어섰다.

“아버지.”

선이 계백을 향해 절을 했다. 청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한 것이다. 고화가 시켰을 것이다.

“많이 컸구나.”

흐려진 눈으로 선을 본 계백의 시선이 고화에게로 옮겨졌다. 밖에서 말굽 소리와 장식이 철거덕거리는 금속 소리, 수군대는 군사들의 목소리까지 들렸다. 그때 고화가 입을 열었다.

“곧 김유신군(軍)이 온다고 들었습니다.”

계백이 시선만 주었고 고화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와 주셔서 이제는 여한이 없습니다. 선(善)이 아비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가겠습니다.”

그때 계백이 밖에 대고 소리쳤다.

“다께다, 거기 있느냐?”

부하 장수를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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