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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89) 15장 황산벌 8
[불멸의 백제] (289) 15장 황산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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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2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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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계백이 황산벌에 포진했어?”

놀란 김유신이 목소리를 높이더니 곧 탄식했다.

“늦었구나.”

“총사령, 계백은 왜병 5천기를 끌고 왔을 뿐입니다.”

김품일이 다가서며 위로했다.

“한식경이면 흩트리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도 내일 오후에는 황산벌에 닿습니다.”

“으음, 선봉대를 먼저 보내 그쪽 산성을 장악해두는 건데.”

김유신이 입맛을 다셨다.

“왜군 기마군의 진군 속도가 이렇게 빠를 줄이야….”

오후 술시(8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다.

이곳은 황산벌에서 2백여리(100km) 떨어진 무릉군의 벌판, 백제 동방(東方) 지역이지만 백제군은 보이지 않는다. 동방 방령 사택부가 1백여리 떨어진 군창성 위쪽에 3만 군사를 거느리고 숙영하고 있지만 이미 신라군과 내통하는 사이다. 그동안 두 번이나 전령이 오갔기 때문에 오히려 우군(友軍) 같다. 반역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고금 역사에 기록된 반역자가 스스로 반역이라고 느낀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온갖 이유를 붙여 합리화시켜놓기 때문에 나중에야 평가된다. 지금 사택부가, 연임자가 그렇다. 김유신의 진막 안이다. 고개를 든 김유신이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의외로 웃음 띤 얼굴이어서 장수들이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 김유신이 물었다.

“백제는 당장 운용할 수 있는 군사가 왜병 5천뿐이다. 백제왕 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과연, 그렇습니다.”

김흠춘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받았다.

김흠춘은 김품일과 더불어 김유신의 최측근으로 대장군이다. 진골 왕족이기도 하다.

“몇 달 전만 해도 동, 서, 남, 북 중의 5방(方)에서 20만 군사를 모을 수가 있었지요.”

“20만뿐입니까?”

김품일이 나섰다.

“신라, 고구려, 백제, 3국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해외 영지인 담로가 22곳이나 되어서 백만 대군을 모으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내부(內部)에서 무너져 버리다니 우습지 않은가?”

이제는 김유신이 정색하고 장수들을 보았다.

“반면교사다. 너희들도 명심해라. 자만하면 필패한다. 백제왕 의자가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대야성을 함락시키고 신라의 성 40여개를 빼앗았다. 그 후로 18년, 신라는 갈수록 위축되었고 백제는 갈수록 교만해졌다.”

김유신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이제 신라는 선덕, 진덕 두 여왕이 죽고 나서 김춘추가 왕이 되었다. 대야성에서 김춘추는 사위 김품석과 딸을 잃었다. 그야말로 절치부심, 김춘추는 왜는 물론이고 고구려까지 찾아가 원병을 구걸했고 당은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가 읍소했다. 아들 김법민을 당왕 이치의 시종으로까지 바친 김춘추의 노력이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 교만해진 백제 내부를 대성8족의 반역으로 이끈 김춘추의 외교술이 결실을 본 것이다. 김유신이 말을 이었다.

“이제 내일 황산벌에 닿고, 그다음 날은 백제의 마지막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나서 당군(唐軍)과 만나게 된다.”

김유신의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흐려졌다. 온갖 감회가 밀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신라왕이 된 김춘추와 수십 년간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신라를 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백제 멸망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계백군만 물리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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