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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90) 15장 황산벌 9
[불멸의 백제] (290) 15장 황산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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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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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계백이 황산벌 위쪽 3개 산성(山城)에 입성했습니다.”

달솔 해수가 보고하자 청 안에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다. 의자도 침묵한 채 해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조금 전 동방방령 사택부한테 보냈던 전령이 돌아와 보고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택부는 갑자기 병이 나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다. 적이 눈앞에 왔는데 왕의 명을 받은 장수가 병이 났다고 드러누운 꼴이니 기가 막힐 일이 일어났지만 이제 분개하는 신하도 없다. 그때 내신좌평 연임자가 입을 열었다.

“계백은 유배되었던 흥수와 함께 있습니다. 더구나 대왕이 부르시는데도 도성에 오지 않고 있는 데다 부르러 간 덕솔 하성까지 베어 죽였습니다.”

의자는 듣기만 했다. 덕솔을 죽인 것은 함께 내려갔던 계백의 사신이었지만 연임자는 그렇게 말을 만들었다.

“대왕, 당군(唐軍)이 서쪽에서 나흘 거리로 다가오는 중이고 신라군은 동쪽에서 역시 나흘 거리에 있습니다.”

연임자가 말을 이었다.

“이것은 모두 성충, 흥수, 윤충, 의직 등 반역의 무리가 대왕을 부추겨 방심하시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권력을 잡기에만 혈안이 되어서 당과 신라가 연합하는데 대비하지도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남에게 그대로 뒤집어씌울 때 자신의 행적을 그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 의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재위 20년, 나이 40이 넘어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이제 60대다. 백관의 시선을 받은 의자가 입을 열었다.

“내가 40여 년간 수십 번 전장에 나갔지만 단 한 번도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한 적이 없다.”

의자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오명을 남기고 이 세상을 하직할까 두렵다.”

“대왕께서는 영웅이십니다.”

연임자가 바로 소리치듯 말했다.

“곧 동방군(東方軍)과 서방군(西方軍), 그리고 남방군(南方軍)이 이어서 올 터이니 그동안 웅진성으로 몸을 피하시는 것이 낫습니다.”

청 안이 술렁거렸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동방군 3만은 지금 사택부가 거느린 채 움직이지 않았고 남방방령 의직은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그래서 지금 방좌인 은솔 해무가 남방군 3만을 지휘하고 있지만 병력이 분산되어서 집결시키려면 열흘은 더 걸릴 것이다. 서방군은 달솔 상영의 지휘하에 백강(白江)으로 출동했다가 당군(唐軍)을 놓치고 나서 뒤를 쫓는 형국이 되어있다. 그러나 4만 병력으로 중과부적인 데다 기세가 떨어졌다. 당군은 전투병만 13만인 것이다.

의자가 고개를 들고 위쪽을 보았다.

“모두 내 탓이다. 내가 이렇게 만들었구나.”

그때 좌평 충상이 나섰다. 충상은 윤충 대신 병관좌평을 맡고 있었는데 50대 중반이다. 충상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의자를 보았다. 눈에 물기가 가득 차서 그렇다.

“대왕, 소신이 황산벌로 가서 계백과 함께 있겠습니다.”

의자의 시선을 받은 충상이 말을 이었다.

“황산벌에서 40리 거리의 토성에 계백의 처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충상이 똑바로 의자를 보았다.

“어젯밤 그 토성에 불이 났고 하인까지 흩어져 빈 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

의자가 마른 목소리로 묻자 충상이 외면하고 대답했다.

“계백이 처자를 죽이고 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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