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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하지 않습니다. 너무 보고 싶습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너무 보고 싶습니다”
  • 최정규
  • 승인 2019.02.27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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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2월생인 홍금영 씨 “아빠 찾고 싶다” 전북경찰청 찾아 기자회견
태어난지 7일만에 어머니 잃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예 없어
6살 되는 해 홀트아동복지회에서 프랑스로 입양
프랑스 양부모도 2013년 교통사고로 숨져, 이후 항상 한국 그리워 해
조선강국이던 한국 오기 위해 대학·직업도 조선 관련 종사
27일 6살 때 프랑스로 입양됐던 홍금영(47)씨가 전북경찰청에서 친부를 찾는 기자회견을 열고 어릴 때의 기억을 말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27일 6살 때 프랑스로 입양됐던 홍금영(47)씨가 전북경찰청에서 친부를 찾는 기자회견을 열고 어릴 때의 기억을 말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두 손을 모아 기도한 후 사각 식탁에 있던 밥과 국, 작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 석탄을 넣어 불타올라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어 준 난로, 친구들과 누워서 잠이 들었던 모습, 마당에 늘어선 감나무와 옥수수, 하얀 수녀복을 입은 여성과 헤어져 슬퍼하던 모습.’

여섯살 때 프랑스로 입양돼 타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홍금영씨(47·여)의 기억 조각이다. 이 기억은 홍 씨가 익산 기독영아원(현 기독삼애원)에서 생활했을 때다. 유년 시절 기억 대부분과 한국어 조차 잊은 그는 지금 자신의 뿌리를 찾고 있다.

1972년 2월 18일 홍 씨는 전주예수병원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생후 7일이 지난 후 어머니는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홀로 남겨진 홍씨는 예수병원의 한 직원에 의해 영아원으로 보내졌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무하다.

홍씨의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자 희망은 홍씨가 영아원으로 보내질 때 수용의뢰서를 작성했던 예수병원 사회복지과 김복혜씨다.

6살까지 영아원에서 보낸 그는 여섯살 때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프랑스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홍씨를 입양한 부모는 친딸과도 같이 사랑을 줬고 좋은 교육환경도 만들어줬다고 한다. 홍씨는 열두살 되던 해 스페인의 테네리프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이 환경에서 홍씨는 자신의 뿌리는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조선강국으로 소문난 한국에 가기 위한 방법은 조선소에서 근무를 하는 방법뿐이었다. 대학에서 해양공학을 전공한 홍씨는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선박설비 전문회사인 DNV GL에서 검사관으로 취업했다. 아버지를 찾는 꿈이 직업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렇게 취업에 성공한 홍씨는 독일 ‘첫 여성 선박검사관’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줬다. 가족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홍씨는 대한민국 총 영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전북지방경찰청까지 찾아왔다. 그가 유일하게 찾은 단서는 기독삼애원(예전의 영아원)에서 어렵사리 확인한 ‘아동개별조사서’와 ‘영아원의 수용의뢰서’.

너무나도 간절하기에 회사에 “한국 조선소에서 근무를 하고싶다”고 근무지를 신청하기도 했다.

홍씨는 “아버지를 꼭 찾아 만난다면 보고싶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버지가 왜 나를 버렸는지, 무슨일을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모든 아버지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2013년 4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양부모를 잃었는데 아버지마저 잃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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