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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맞서 싸운 독립유공자 후손 찾지 못해 창고에 쌓인 훈포장
일제 맞서 싸운 독립유공자 후손 찾지 못해 창고에 쌓인 훈포장
  • 최정규
  • 승인 2019.02.28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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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서 항일운동 벌여 독립유공자 인정받은 973명 훈포장 수여
하지만 이 가운데 334명 후손 찾지 못해 훈포장 전달 되지 않아

자유독립을 외치며 일제에 맞선 전북 항일운동 독립유공자들의 후손을 찾지 못해 전달되지 못한 훈포장이 334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전북지역에서 일제에 맞서 싸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훈포장을 수여받은 인물은 총 973명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의병활동 후원 및 임시정부 참여 및 광복군, 국내·외 항일운동, 3·1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다.

이 가운데 훈포장 334개는 후손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후손들이 누구인지, 주거지는 어디인지 등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훈지청은 후손을 찾기 위해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과 협조를 통해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역추적 해오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제적부상 본적, 주소 등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거나 제적부 소실, 해외 활동자 등 사유로 후손이 확인되지 않고 있어서다.

이처럼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에게 수여된 훈포장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심상룡(1873~미상) 선생은 지난 1919년 3월 23일 임실군 두남면 오수에서 장날을 맞아 수백명의 시위 군중을 지휘했다. 심 선생은 대열의 맨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는 또 동료들과 함께 두남면사무소를 습격, 유리창과 각종 비품 등을 파괴한 후 한 일본인의 집을 습격했다. 심 선생은 일본경찰(일경)에 쫓기다 잡혀 징역 4년을 받아 옥살이를 했다. 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 국가보훈처로부터 애국장을 수여받았지만 후손을 찾지못해 애국장이 전달되지 못했다.

유선태(1862~미상) 선생도 1919년 3월 2일 전주의 천도교 교구실에서 민영진에서 서울에서의 상황과 ‘대한독립선언서’를 받았다. 유 선생은 대한독립선언서를 많은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수천 장을 복사한다. 13일 그는 남문 장날을 기해 미리 준비한 대한독립선언서를 살포한 후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경은 유 선생을 체포, 법정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국가보훈처는 유 선생에게 2006년 애족장을 수여했지만 역시 전달되지 못했다.

보훈지청 관계자는 “제적부가 소실되거나 본적·주소 등이 현 주소와 다른 경우가 많아 수훈자 후손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다”면서 “독립유공자로서의 예우와 명예, 선양을 위하고 후손들의 생활안정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도 후손 찾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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