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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 이완용’ 기리는 휼민 선정비 처리 놓고 의견 분분
‘매국 이완용’ 기리는 휼민 선정비 처리 놓고 의견 분분
  • 박태랑
  • 승인 2019.03.05 20:3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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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매국노 비석이라 해 줄포면사무소 창고 수십년째 보관중
1898년 줄포면 해일 발생때 이완용이 부안군수 공로 치하하며 세워
"박물관에 보내야한다" vs "그냥 폐기시켜야 한다" 의견 분분
5일 부안군 줄포면사무소 창고에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이완용의 휼민 선정비가 보관되어 있다. 조현욱 기자
5일 부안군 줄포면사무소 창고에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이완용의 휼민 선정비가 보관되어 있다. 조현욱 기자

“보편적 친일도 아닌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는 당장 때려부서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부안 줄포면사무소 창고에 보관 중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완용의 휼민 선정비(공덕비) 처리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일부 주민들은 이 기회에 휼민 선정비의 흔적도 남기지 않도록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또 다른 주민들은 이완용의 치욕적 반민족행위를 각인시킬 수 있도록 박물관에 보전시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 1898년 전라도 부안 줄포면에는 많은 비와 강풍이 불어 해일 피해가 일었고, 이로 인해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시 전라도 관찰사였던 이완용은 재해 예방구호사업을 벌였고, 1899년 유진철 군수와 주민들은 이완용의 공적을 기리는 휼미 선정비를 만들어 마을 장승백이(현재 장성동) 당산나무 아래 세웠다.

이후 해방이 찾아왔고 일부 주민들이 매국노의 비석이라며 훼손했지만 한 농부가 논에서 이를 주워 다시 마을 인근에 세워 놓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를 본 주민들의 휼민 선정비 훼손이 잇따르자 1973년 줄포면장 김병기 씨가 3000원에 이를 구입해 줄포면사무소 뒤편에 세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94년 ‘나라 바로 세우기 및 일제 잔재 없애기 운동’이 시작됐고 당시 민선 1기 이철규 군수 지시로 휼민 선정비를 뽑아다 줄포면사무소 창고에 보관하도록 해 현재까지 창고에 보관되고 있다.

이완용 휼민 선정비는 폭 41.5cm, 길이 109cm, 두께 10cm로 본래는 갓비(갓 모양이 씌여있는 비석)였으나 현재 갓은 사라진 상태다.

이완용의 휼민 선정비에 대한 역사는 ’내 고향 줄포’를 쓴 故김장순씨 육필원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고에는 ‘1898년(무술년) 어느 가을밤에 갑자기 줄포에 큰 해일이 일어 주민들은 가재도구를 잃고 천태산으로 피신했으며 줄포항의 배들은 지금의 십리동(십리꼴) 마을과 원꼴(장동리 원동) 마을의 똥섬까지 밀렸는데 이 가운데에는 비단을 실은 중국 배도 있었다. 이 때 전라도관찰사인 이완용은 줄포에 와서 참상을 살피고 우진철 군수로 하여금 난민 구호와 언뚝리 제방을 중수토록 하여 제방은 예전보다 더욱 견고하게 수리되었고 이후 일제 때 서빈들 매립공사가 이어져 오늘의 줄포 시가가 형성됐다’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는 이완용 휼민 선정비에 대해 본래의 자리에서 보존시켜 이완용의 잘못을 알리는 표지를 세우거나 박물관에 맡겨 관리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반면 반민족친일행위자의 공덕비인 만큼 치욕을 주거나 폐기 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춘호 부안군 줄포면장은 “우리 면에서는 정부시책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라며 “주민 의견수렴과 함께 정부, 군, 역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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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ㄹ 2019-03-06 10:27:20
다가교 석등 옆에 세워서 일제침략의 다리로 명칭을 바꿉시닷

ㅇㅅㅇ 2019-03-05 21:45:36
박물관 화장실 바닥에 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