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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 화백의 섬진팔경 이야기] (17) 광양 무동산 (하) 서두르지 않고 이르른 곳 여기
[송만규 화백의 섬진팔경 이야기] (17) 광양 무동산 (하) 서두르지 않고 이르른 곳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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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14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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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무동산에서 봄 2016. 110x210. 장지에 수묵채색.
광양 무동산에서 봄 2016. 110x210. 장지에 수묵채색.

섬진강 물길은 600리 이다.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 째로 긴 강이다. 참 먼데서부터 흘러와준 것이 장하다!

조그마한 옹달샘, 전북 진안의 데미샘에 모인 물방울들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 되어 작은 도랑, 하천을 이루며 주변과 함께 어우러진다. 메마른 논밭에, 강가 언덕의 억새를 적셔주고 밭 메는 어머니의 갈증을 달래준다. 날 저물어 집에 돌아가는 아버지의 삽을 씻어주고 흘러간다. 높은 곳에 고여 있지 않고 필요한 곳을 찾아 아래로, 이 땅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간다. 또 다른 지천들과 함께 더 많은 곳을 더트면서 땅을 적시고 강을 이룬다. 그렇게 목마른 곳을 적시며 협곡이나 들녘을 돌아 돌아 서두르지 않고 이르른 곳 여기, 광양 무동산 아래에서 폭넓은 강을 만든다.

섬진(蟾津)이란 이름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회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왜구가 강 하구에 침입했을 때 광양 땅 섬거에 살던 수십만 마리 두꺼비가 떼 지어 몰려와 울부짖자 왜구들이 피해갔다는 전설에 따라 불리어졌다는 고마운 두꺼비의 공덕을 광양군 다압면에 ‘섬진강유래비’는 전한다. 이렇듯 이 물길은 평온할 수만은 없었다. 선비들이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도포 깃을 휘날리고, 민중들이 시퍼런 죽창을 치켜세웠음에도 섬진강은 끊임없이 왜구들의 침탈로가 되었다. 동학농민전쟁 당시 농민군과 관군의 치열한 싸움이었던 방아치전투(1894) 이후에도 동족상잔으로 강물을 물들게 했던 아픔을 안고 흐른다.

여인들이 잡은 재첩을 실어 나르는 동력선이 물길을 가르며 분주하게 다닌다.

저 앞에 지리산 능선의 부드러운 선율과 그 틈새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숨어있는 강변마을이 주는 아련함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여기 강가의 사람들이 흘린 서러움과 눈물, 절망까지 모두 받아 안고 바다가 보이는 광양만으로 간다.

이제 600리 섬진강은 버려라. 그리고 바다의 시원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를 버린 물방울은 강이 되어 바다의 시원으로 거듭나 강들의 유토피아, 대동세상일 바다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릴 것이다.

경전선인 섬진철교에 화물열차가 지나갔다. 대 여섯 량을 단 여객열차도 평온하게 지나간다. 섬진교 위로 하동과 광양을 오가는 버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달린다. 두 다리를 품어주는 섬진강도 하나의 물줄기로 흘러간다. 목포에서 탔다는 아주머니가 집에서 삶아 온 달걀이라고, 경상도 아지매는 목을 축이라며 두유팩이 서로 오간다.

사람만이 나뉘어 가고 있다.

마음에 평화를 가져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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