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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전승기념일과 전봉준 장군
동학농민혁명 전승기념일과 전봉준 장군
  • 기고
  • 승인 2019.03.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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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무 전북신용보증재단 이사장
김용무 전북신용보증재단 이사장

白鷗詩 (백구시)

自在沙鄕得意遊 스스로 모래밭에 마음껏 노닐 적에

雪翔瘦脚獨淸秋 흰 날개 가는 다리로 맑은 가을 홀로 즐기누나.

蕭蕭寒雨來時夢 쓸쓸히 찬비 내릴 때 꿈에 잠기고

往往漁人去後邱 때때로 고기잡이 돌아가면 언덕에 오르네.

許多水石非生面 허다한 수석은 낯설지 아니하고

閱幾風霜已白頭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었는지 머리 희었도다.

飮啄雖煩無過分 마시고 쪼는 것이 비록 번거로우나 분수를 아노니

江湖魚族莫深愁 강호의 물고기들아 너무 근심치 말지어다.

이 한시는 전봉준 장군이 13살 어린 나이에 백구(갈매기)에 빗대어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어려움을 노래해 지었다는 시다. 이 시만 보더라도 그의 글을 짓는 타고 난재주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비범함이 후일 사발통문, 창의문, 무장포고문, 상서 등의 글을 짓는 데도 유감없이 그 능력이 발휘되었을 것이다.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조선의 백성이 봉건·계급사회를 타파하고 부패한 정치세력과 밀려드는 외세에 직접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해 일으킨 우리 역사의 최대 민주혁명이자 시민·민중운동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애국·애족 정신이 항일의병항쟁운동, 3·1 운동,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촛불시민혁명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그런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은 끝내 실패한 혁명으로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민주혁명의 효시인 동학농민혁명을 기리기 위한 전승기념일이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마침내 지난 달 제정됐다. 이번에 법정기념일로 선정된 정읍 황토현전승일(5월 11일)은 동학농민군과 관군이 황토현 일대에서 최초로 전투를 벌여 동학농민군이 대승을 거둔 날이다.

그 혁명을 주도했던 민초 농민들이 바로 ‘우리고장 전북사람들’이었다는데 큰 역사적 의미가 있다.

전북의 정신으로 자주 동학농민혁명이 회자되지만, 범도민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사업들은 미미했다. 세계 3대 민중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동학농민혁명이 이번 국가기념일 지정으로 그 의미를 선양하고 새롭게 조명되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록되어져야 할 것이다.

어지러웠던 세상 수난의 땅 전라도에서 태어났던 의로웠던 영웅 전봉준 장군은 그가 원하던 세상을 이루지 못하고 의연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사형 판결을 받고 의금부 전옥서(典獄署)에서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 가슴에 사무치는 착잡한 심경을 ‘운명(殞命) 유시’라는 한편의 시로 남겼다.

絶命詩(절명시)

時來天地皆同力 때를 만나서 천지가 모두 힘을 합했건만

運去英雄不自謨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찌 할 수 없구나.

愛民正義我無失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행했으니 내게 무슨 허물 있으랴만

愛國丹心▲有知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

그가 이루고자했던 세상은 아직도 멀다. 그들이 분연히 결의했던 신분해방과 민생 경제 그리고 정치개혁 등의 ‘폐정개혁안 27조’는 12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유효하다. 그래서 그들이 합창했던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우리에게 꿈이자 희망이다.

나라 사랑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목숨을 바친 동학농민군의 정신이 ‘반란의 역사를 넘어, 세계의 역사로’ 드높여져야 할 것이다.

* 위에 소개한 2편의 한시는 송정수 <베일에서 벗어나는 전봉준 장군>(도서출판 혜안)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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