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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시인 - 김성철 시집 ‘달이 기우는 비향’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시인 - 김성철 시집 ‘달이 기우는 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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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2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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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눈빛으로 봄날을 낭비하고 있는 당신에게 전하는 52편의 위로

시집이 배달됐다. 키 크고 잘 생긴, 시밖에 모르는 그가 떠오른다. 페이지를 연다. 흑백의 우울한 풍경, 불우한 청춘의 자화상이 펼쳐져 있다. 비정한 자본주의 그늘 환멸과 굴욕, 권태와 우울 속을 그와 걷는다. 그때 폭설이 동반한다. 때론 향이 나는 비를 ‘달이 기우는 쪽’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비를 옷장에 넣어두고 신발장에도 쟁여두고 밥솥 가득 밥을 짓”(‘달이 기우는 비향’)는 것이다. 불행의 촉수에 민감한 그는 불완전하고 결핍인 채로 살아가는 것들을 사랑한다. 따라서 극사실화 화풍을 지닌 그의 시들은 ‘부서진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하긴 랭보였던가,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그는 200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학부시절 촉망받는 문사였다. 내 모교의 축제 뒤풀이 장소였던가! 청년은 몇 시간 내내 문학 얘기만 했다. 세기의 희망적 담론이나 밥벌이의 치사함, 대학 축제에 어울릴 만한 청춘들의 연애사는 안중에 없었다. 詩를 끌이고 사는 모양이었다. 그날 어쩌면 문학의 고질을 앓고 있는 청년에게‘시 바이러스’에 감염됐을지도.

김성철 시인이 이끄는 대로‘흐린 추억의 영사실’로 들어가 보자. 웅숭깊고 애련한 어조로 어머니를 부르는 장면이 많다. 그러나 가족 서사를 넘어 인류 보편 비극적 경험의 인식으로 확장한다. 그 풍경 속에는 끊임없이 공간이 변주된다.“살아야겠다고 다짐할 때마다 흔들려 구간과 구간을 반복할 때마다 덜컹”(‘지하철 생활자의 수기’)이는 지하철이 나오고 서민아파트가 나오고 뭉툭한 연필밖에 없는 유년기 외로운 방이 소환된다. 또 삶의 등가물인 실직과 구직, 자본주의 세계를 밀도 있게 재현함과 동시에 고통의 순간을 미적 쾌감의 순간으로 바꿔놓는다. 불화하지만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의지로“볕 그늘에 앉아 하루 종일 들풀들의 이름이나 지어 줬으면 (중략) 그리하여 고운 이름 하나 얻어 당신 닮은 딸을 만들고 들풀이라고 부르며 종일토록 들판에 피어 있었으면”(‘괭이밥’)하고 평범하고도 따뜻한 미래를 꿈꾼다. 취업도 연애도 제대로 되지 않는 청춘들의‘부재와 결핍’을 시의 몸을 빌려 웅변하고 위로하는 것. 고단과 불안의 시간을 견디는 이들에게, 이 시집은 내적 충일감과 ‘살아내는 자’의 존엄을 선사할 것이다. 그는 문학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다고 꿈꾼다. 꿈꾸는 영혼이란 얼마나 적나라하게 불행한 것인가, 그러나 시인은 그 불행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아름답고 용감한 그를 응원한다.

 

기명숙 시인
기명숙 시인

* 기명숙 시인은 목포 출신으로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로 당선됐다. 글쓰기 센터, 공무원 연수원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지평선 동인시집 <줄노트에 대한 기억>, 논문 <현실과 시적형상화>, 학술서 <학제통합논술 교재연구> 등이 있다.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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