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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54. 여산이 빚은 술과 가람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54. 여산이 빚은 술과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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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0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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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면서도 술잔을 놓을 수 없고 / 늙어가면서도 분필을 던질 수 없다 / 분필과 술잔으로나 내 한 생을 보낼까” 가람 이병기(嘉藍 李秉岐, 1891-1968년) 선생의 <내 한 생(生)>이란 시이다. 애주가이자 선생으로 살아온 그의 삶이 오롯이 드러난 시구이다. 가람선생이 생전에 ‘술 복, 제자 복, 난초 복’ 세 가지 복을 타고 나 스스로가 삼복지인(三福之人)이라 말한 것에는 그가 태어나 말년을 보내고 잠들어 있는 전북 익산의 여산(礪山)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연안이씨(延安李氏)의 가양주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여산은 호남의 땅이 시작되는 곳으로 국도 1호선이 지나는 곳에 있다. 예로부터 여산은 많은 사람과 사연이 지나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길손들에 의해 술맛 좋기로 소문이 난 곳이었다. 여산의 술이 맛있고 유명한 데에는 지역에서 나는 쌀과 물도 좋지만 땅이 지닌 힘도 있는 듯싶다. 특이하게도 여산에 있는 천호산(天壺山, 마을에서 불린 이름 호산)은 단지나 병에 사용되는 한자 호(壺)를 쓰고 있다. 여산의 산 이름 ‘호산’에 고급술에만 붙인다는 춘(春)자를 붙여 “호산춘(壺山春)”이 탄생했다. ‘춘’자를 붙인 이유는 중국에서 고급술을 춘주(春酒)라 칭한 것에 유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여산의 호산춘 외에도 서울의 약산춘, 평양의 벽향춘 등 춘(春)자를 붙인 술들이 있다.
 

가람일기와 가람 선생이 사용한 술잔.
가람일기와 가람 선생이 사용한 술잔.

고문헌에도 호산춘에 관한 기록이 많다. 우선 『산림경제』 <여산방>에 호산춘을 빚는 법이 처음 등장하는데, 멥쌀와 누룩을 사용하여 13일 간격으로 세 번에 걸쳐 빚어내는 삼양주(三養酒)로 기록되어 있다. 『고사십이집』에는 “호산춘(壺山春)은 여산에서 나온 술로 여산을 호산이라 불렀기에 나온 이름”이라 정의하면서 술 빚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익의 『성호전집』에는 <호산춘(壺山春)>이란 시가 실려 있는데 “호산춘 술 빛이 잔에 그득 담겼으니 / 그대의 깊은 정에 감사해 백 잔도 불사하리”라며 호산춘을 가져다준 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구가 남아있다. 여산 외에 다른 지방에도 호산춘이라는 이름의 술이 있지만, 문헌에 나오는 호산춘의 ‘호(壺)’와는 다른 호수‘호(湖)’자를 쓰고 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명주로 불린 호산춘은 ‘호(壺)’자를 쓰는 여산의 술을 말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호산춘은 가람 선생 집안을 중심으로 여산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술로 알려졌지만, 정작 그는 호산춘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1951년 3월 5일, 나의 회갑. 일기가 화창하다. 헌수를 받고 또 내빈들과 종일 마셨다. 크게 취하였다.” “1955년 4월 14일, 비가 온다. 두견주를 빚었다.” “1956년 1월 1일, 만발한 매화와 한잔 마셨다.” 가람 선생이 19세인 1909년 4월부터 1966년 6월까지 58년간 쓴 <가람일기>에도 술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지만 호산춘을 마셨다는 대목은 보이지 않는다.

가람 선생의 가문에서 내려오는 가양주는 선생의 25대 조부인 이현려(1136-1216년)가 고려 의종조 때 소부감판사 겸 지다방사(궁중의 살림 특히 음식 담당)로 있으며 빚어 내려온 술이라 전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음식과 술을 잘하는 집안으로 알려진 연안이씨 가문에서 내려오는 가양주는 고려 시대 궁중에서 마시던 술이라 하여 ‘임금님 술’로 불리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미루어 보아 여산에서 거주하는 연안 이씨 가문에서 빚던 술인 그 임금님 술이 호산춘으로 불리며 후손들을 중심으로 여산 지역에 그 명맥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북 무형문화재 64호 여산호산춘 보유자 이연호 명인.
전북 무형문화재 64호 여산호산춘 보유자 이연호 명인.

현재는 가람 선생의 동생이며 독립유공자인 이병석 선생의 장녀인 어머니(이경희)에게 술 빚는 법을 배운 이연호(1946년생) 명인이 호산춘의 전수자이다. 이연호 명인은 농림부에서 주최한 2013년 ‘궁중 술빚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2018년엔 전북 무형문화재 제64호 여산호산춘 보유자로 지정되며 인정받았다. “공부를 잘했던 다른 형제와 달리 나는 펜싱선수라 시간이 많았어요. 어머니가 술을 빚을 때 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어깨너머로 보았던 것이 외가 집안에서 임금님 술로 불린 호산춘을 전승받게 된 셈이 되었네요. 어릴 적에 술을 담아 오면서 주전자 주둥이에 슬쩍 입을 대고 마시던 그 감칠맛이 지금도 생각나요.” 술이 익듯이 느리게 말을 하며 빙그레 미소 짓는 이연호 명인의 말맛 또한 일품이고, 시중에 팔지 않는다는 호산춘을 건네받아 마셔보니 850여 년의 세월이 담긴 술맛이 가히 명품이다.

호산춘은 맑고 고고한 빛을 지녔으며 단맛과 과실의 깊은 향이 입안에서 감돌다 부드럽게 흘러드는 목 넘김이 좋은 술이다. 가람 선생은 국문학자이자 시조 시인으로 한글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와 더불어 술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은 이 깊은 술맛 때문인 것 같다. <가람일기>에 등장하는 두견주와 국화주에 대하여 이연호 명인은 호산춘에 꽃을 더해 즐긴 가람 선생의 ‘꽃주’이자 ‘계절주’라며 그간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가람 선생의 집안에 내려온 가양주는 옛 제조방식과 연못 옆 정자에서 누룩을 띄우는 것도 그대로 전승되어 이연호 명인이 사는 함열의 집에서도 연못 옆 정자에서 누룩을 띄운다. 그러한 연유로 연못의 습기를 머금은 최상품 누룩이 군내 없는 풍미를 만드는 것 같다.
 

여산 가람 선생 생가.
여산 가람 선생 생가.

명인에게서 귀한 호산춘을 건네받고 그 술을 그리워할 가람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술을 올리고 내려오는 길에 새소리와 댓잎이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가람 선생의 ‘별’을 읊조렸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햇살이 눈부신 날 봄볕은 별처럼 반짝이고 아름다운 시구가 피어난 가람 선생의 생가 주변이 정겹다. ‘수우재(守愚齋)’라 이름 지어진 생가 옆에는 가람 문학관이 있어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인 가람선생의 삶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게 해 놓았다.

“한 손에 책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꽃이 피었으니 술을 마시자며 청했을 가람선생의 마음이 느껴지는 시이다. 봄꽃이 다투어 피어나는 시기, 여산을 찾아 화초와 술을 사랑한 선생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곡주에 꽃을 띄워 올려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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