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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환 신부 선종 - 걸어온 길] 벨기에서 온 ‘임실 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신부 선종 - 걸어온 길] 벨기에서 온 ‘임실 치즈의 아버지’
  • 김태경
  • 승인 2019.04.14 20: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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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지정환 이름 얻고, 57년만에 한국 국적 취득
치즈 개발, 지역경제 활성화 장애인 복지 증진 헌신
지난 2017년 5월 22일, 지정환 신부(왼쪽)가 심민 임실군수에게 자신이 1964년 임실성당에 부임한 이후 현재까지의 활동한 자료를 전달하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22일, 지정환 신부(왼쪽)가 심민 임실군수에게 자신이 1964년 임실성당에 부임한 이후 현재까지의 활동한 자료를 전달하고 있다.

유럽의 치즈 기술을 한국에 전파하고 장애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헌신한 지정환 신부가 지난 13일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임실 치즈의 아버지’라 불리는 지 신부는 1960년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오며 전북과도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일평생 약자와 함께 했고, 그래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따뜻한 불빛이 꺼지지 않고 있다.

 

△‘한국에 희망을’ 벨기에에서 임실까지

1931년 벨기에의 유복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지 신부는 1958년 사제 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에 왔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떠나온 먼 길, 외국인 사제의 눈은 전쟁의 상흔으로 피폐해진 한국 땅에 새 희망을 주겠다는 사명으로 빛났다.

1960년 3월 첫 발령을 받은 천주교 전주교구 전동성당에서는 ‘지정환’이라는 한국이름을 얻는다. 그의 본명 ‘디디에’의 발음과 비슷한 ‘지’를 성으로 정하고, 전주교구 김이환 신부의 이름 ‘환’을 따 ‘정환(正煥)’이라고 이름 지었다.

1961년 부안을 거쳐 1964년에는 척박한 산골동네 임실 성가리의 한 임시성당에 주임신부로 발령받는다. 지 신부는 풀밭이 많은 임실에서 농민들의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 주기 위해 마을 청년들과 함께 산양을 키운다.

하지만 판매가 힘들고 남아서 버려지는 산양유가 늘자, 처리 방법을 고민하던 중 ‘치즈’를 떠올리게 된다. 남는 산양유에 누룩을 넣고 약탕기에 끓이는 등 여러 시도에도 치즈 생산은 쉽지 않자 지 신부는 유럽으로 치즈 견학까지 다녀온다.

그렇게 1969년 농민들과 함께 치즈를 만드는 데 성공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치즈 공장이 임실에서 출발을 알리게 된다. 임실의 모짜렐라 치즈는 서울의 유명 호텔과 피자가게로 판로를 넓히며 많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완주 ‘별아래 집’과 전주 ‘무지개 가족’

임실에 치즈 산업이 꽃피는 사이, 지 신부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1970년대 말 발병한 ‘다발성신경경화증’ 이라는 불치병으로 하반신 마비 증세가 나타난 것.

결국 1981년 지 신부는 임실치즈 산업을 비롯한 모든 권한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며 치료를 위해 벨기에로 떠난다.

3년 후 치료를 마치고 휠체어를 탄 채 다시 한국에 돌아온 지 신부는 사비를 털어 전주에 장애인을 위한 집을 연다. 중증장애인의 재활을 돕기 위한 공동체 ‘무지개 집’과 ‘무지개 장학재단’. 완주 소양의 ‘별아래 집’에서 거주하던 지 신부는 불편한 몸에도 전주의 ‘무지개 장학재단’을 부지런히 오가며 자신과 같은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 증진에 여생을 바쳤다.

장애인들이 자립하고 사회와 만나는 것에 큰 관심을 뒀던 지 신부의 뜻은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주기도 했다. ‘임실치즈농협’과 ‘지정환 치즈피자’의 많은 체인점에서는 브랜드 사용료로 무지개 장학재단에 장학금을 지속적으로 기부했으며 ‘세영재단’과 ‘무지개가족’도 장학금 조성에 뜻을 함께 했다.
 

지난 2017년 10월 27일 임실읍 옛 치즈공장 현지에서 열린 ‘치즈역사문화공간’준공식에서 지정환 신부(왼쪽 네번째)가 테이프커팅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17년 10월 27일 임실읍 옛 치즈공장 현지에서 열린 ‘치즈역사문화공간’준공식에서 지정환 신부(왼쪽 네번째)가 테이프커팅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 온지 57년, 한국인 되다

2016년 정부는 임실 치즈 개발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장애인의 복지를 증진하는 데 기여한 지정환 신부의 공로를 인정하며 한국 국적을 수여한다. 한국에 온지 57년 만에 진짜 한국인이 된 것.

2017년 5월에는 임실치즈 50년사 복원 작업을 위해 두 팔을 걷었다. 지 신부는 1964년 임실성당에 부임한 이후 현재까지의 활동 자료를 기증함으로써 임실군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임실치즈 관련 ‘역사문화공간 복원사업’에 힘을 실어줬다. 이 자료에는 지 신부가 당시 촬영했던 임실읍 시가지와 치즈 생산과정, 치즈공장 신축 및 치즈 생산에 참여한 주민과 함께 찍었던 사진이 들어있다. 지 신부는 임실치즈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53년 세월이 담긴 사진자료를 일일이 편집, 앨범으로 제작했다.

그의 성원에 힘 입어 2017년 10월 27일 임실읍 옛 치즈공장에서는 임실치즈 50년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치즈역사문화공간’의 준공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지정환 신부는 “어려운 주민을 위한 치즈산업이 결실을 맺어 감회가 새롭다”며 “오늘의 임실치즈가 탄생하도록 지원한 심민 군수와 군민들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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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2019-04-14 22:44:03
가난한 이웃을 향한 당신의 섬김과 사랑 천국에서 영원히 빛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