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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등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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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승인 2019.04.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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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긴 겨울 속에서 우리는 따뜻한 봄을 기다려 왔습니다. 여느 해처럼 복수초, 변산바람꽃, 노루귀, 영춘화 등 봄의 전령사가 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도 왠지 올봄은 봄 같지가 않습니다. 그건 아마도 계속된 미세먼지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꽃밭으로 변하여도 누구든 집 밖으로 나오길 꺼리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불안한 듯 눈망울을 껌뻑거리며 걷고 있는 풍경이 일상화된 요즈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풍경이 있습니다. 앞에 누가 오든 말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걷고 있습니다. 마침내 인공지능 시대가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십년 후를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물질문명으로 계속 이어가다 보면 백년 후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의 내면에 자욱한 미세먼지입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공고히 유지되면서 일어나게 된 현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갈수록 핍진해가는 우리 영혼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새삼 미개했던 옛 세상이 그리워집니다. 하늘을 향하여 신비로 가득한 대자연을 찬양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그렇게 간절히 살아왔던 상고시대 말입니다.

조선 중기시대 승려인 서산대사(1520~1604)는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라는 선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국의 사찰 승려들을 독려, 승병을 일으켜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또한 독립 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도 시국이 어지럽고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할 때마다 서산대사의 ‘답설야(踏雪野)’를 되새기면서 실행에 옮겼다고 합니다. 무릇 인간관계란 서로가 서로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겸손한 마음으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올바른 길로 가고자 합니다. 나도 누군가의 꽃길로 가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은 한결같이//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다리를 갖지 않았습니다//밉거나 예쁘다를 말할 줄 아는/입을 갖지 않았습니다//아름답다거나 추하다를 분별하는/눈을 갖지 않았습니다//주변이 소란스럽다거나 적적함 따위를/멀리하는 귀를 갖지 않았습니다//구릿하다거나 향기롭다는 물론/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향마저도 거부하는/코도 갖지 않았습니다//누구에게도 곁으로 와 달라거나 멀리하라는/수화마저 보낼 수 있는/손도 갖지 않았습니다//오직, /바람과 눈과 비와 구름과 해와 달과 별을 삭이며/생각마저도 버리는 선정(禪定)이/눈을 가진 모든 이들의 얼굴과 얼굴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없음에서 있음을 이루고/어둠에서 밝음을 여는/정령(精靈)의 화신(花神)이기 때문입니다.

-「꽃이 되는 이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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