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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았을 마지막 길’…고 지정환 신부, 한국땅에 잠들다
‘외롭지 않았을 마지막 길’…고 지정환 신부, 한국땅에 잠들다
  • 천경석
  • 승인 2019.04.16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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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전주 중앙성당 장례미사
고인 뜻 따라 마침성가 ‘만남’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에 안치
16일 전주 중앙성당에서 치러진 故지정환 디디에 신부 장례미사 및 고별식에서 유족들과 신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수와 분향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조현욱 기자
16일 전주 중앙성당에서 치러진 故지정환 디디에 신부 장례미사 및 고별식에서 유족들과 신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수와 분향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조현욱 기자

1959년. 홀로 한국행 배에 오르는 그의 모습을 생각한다. 벨기에 귀족 집안 막내아들로 태어난 20대 젊은 신부는 이탈리아에서 한국행 배에 올랐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떨림과 불안, 그보다 앞선 사명감이라는 마음이 그를 휘감았을 것이다. 한국에 발을 디딘 지 60년. 홀로 배에 올랐던 젊은 사제는 미지의 세계였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이 됐고, 사람들은 그를 한국 치즈의 아버지라 부른다. 홀로 오른 배 안에서 그는 외로웠겠지만. 한국 땅에 묻히는 그의 마지막 날은 외롭지 않았다.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17일 오전 10시. 전주 중앙성당에서 고 지정환 신부의 장례 미사가 봉헌됐다. 그의 마지막을 위한 신자들의 발걸음은 이른 아침부터 이어졌다. 800여 명이 들어가는 성당 내부에는 사제와 수도자, 신자 등 1000여 명과 지 신부가 끝까지 마음을 썼던 ‘무지개 집’ 식구들이 찾아와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성당 제대에 마련된 지 신부의 영정 앞에서 사제와 신자는 고개를 숙였고, 진심으로 그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했다.

장례미사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지 신부의 약력 소개로 시작됐다. 전주교구 총대리 박성팔 신부는 “지정환 신부님은 성경 말씀에 따라 고통받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데 정성을 쏟고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했다”며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신부님께서는 편안한 모습으로 선종하셨다”고 전했다. 지 신부의 숭고한 삶을 설명하는 말들이 성당을 가득 메우자 수도자와 신자들은 두 손을 가만히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고 지정환 신부가 전주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에 안치되는 모습을 성직자와 신자 등이 지켜보고 있다.
고 지정환 신부가 전주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에 안치되는 모습을 성직자와 신자 등이 지켜보고 있다.

지 신부의 마지막 전언을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에게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김선태 주교는 강론말씀을 통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지 신부는 장례미사 때 신도들에게 ‘희망’과 ‘하느님의 계획’을 전달해 달라고 했다”며 “자신이 한국에 오고 치즈를 생산하고 병을 얻어 떠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며 자신은 하느님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의 도구였을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 신부는 2003년 일선에서 물러난 뒤 불어 사료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에도 매진하며 전주교구 사료는 모두 번역을 끝마쳤고, 전국에 있는 사료들도 상당 부분 완료했다”며 “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 신부의 발자취”라고 덧붙였다.

1시간 30분 남짓 이어진 미사는 고별식으로 끝을 맺었다. 벨기에에서 삼촌의 장례에 참석한 아니따 씨(조카)는 “디디에(지정환) 삼촌이 한국에서 생활한 60년 동안 친가족처럼 대해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며 “이 자리에 함께해준 여러분께 감사하며, 저희 삼촌 디디에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를 보냈다.

지 신부의 관이 성당을 빠져나갈 때 장례미사를 마치는 성가로 노사연의 ‘만남’이 흘러나왔다. 지 신부가 생전 원했던 일. 노래 속 가사처럼 우리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듯, 지정환 신부의 숭고한 노력도 우연한 것은 아니었다.

“내 첫 부임지인 부안은 첫사랑이고, 두 번째 부임지인 임실은 고향입니다. 영원히 한국과 함께할 겁니다.”

지정환 신부의 말은 현실이 됐다. 지 신부는 이날 오후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에 안치됐다.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푸른 눈의 한국인. 지정환 신부는 한국 땅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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