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5-27 01:21 (월)
우리 정치와 멧돼지의 교훈
우리 정치와 멧돼지의 교훈
  • 기고
  • 승인 2019.04.17 2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용호 국회의원(남원시임실군순창군·무소속)
이용호 국회의원(남원시·임실군·순창군 무소속)
이용호 국회의원(남원시·임실군·순창군 무소속)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벚꽃이 찬란하다. 윤중로에서 꽃비를 맞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발걸음이 가볍다. 국회 바깥은 축제 인파로 북적여도 국회의원들은 매년 4월 열리는 임시회로 정부 업무보고, 법안 심사에 바쁜 일정을 보내곤 한다.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여의도의 봄 풍경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여야 갈등으로 국회가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며 4월 임시회가 아예 열리지 않고 있다. 해야 할 일을 못하니 벚꽃 올려다보기가 부끄럽고,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이달 초 ‘일하는 국회법’을 통과시킨 게 무색해질 정도로 국회의 허송세월은 자꾸만 길어진다.

그러는 사이 ‘막을 수 있었지만’ 제때 예방을 하지 못한 사고들로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고 있다. 이번 4월에만 두 건이다. 바로 강원도 대형 산불, 서울시 금천구 아이돌보미 영아학대 사건이다.

지난 4일 밤 발생해 여의도 면적 6배를 태운 강원도 산불은 사실 예측된 일이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계속됐다. 4일 오전에는 전국에 건조특보가 내려졌으며, 태풍에 버금가는 강풍이 다음 날까지 예보돼 있었다. 특히 동해안은 2005년 낙산사를 순식간에 불태운 ‘양간지풍’이 불어 많은 전문가들이 이날 중 대형 산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산불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나는 4일 오전 논평을 내 정부 차원에서 ‘준비상사태’ 수준의 대비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미리 가동해 화재예방에 집중하고, 산불 발생 시 조기진화 태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중대본은 화재발생 이후인 5일 0시가 돼서야 가동됐다. 청와대는 대응이 잘 됐다고 자평하지만, 발생 ‘이전’에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면 그 화마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크다. 이 와중에 국회에선 여야가 국가안보실장의 운영위 이석 불허를 두고 정쟁이나 하고 있으니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과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지 묻고 싶다.

지난 2일 알려진 아이돌보미 영아학대 사건 역시 예견된 일이고, 막을 수 있는 문제였다. 제도 설계가 공급에 치우쳐 자질이 부족한 사람도 손쉽게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이집 교사의 경우 2016년 법 개정으로 자격요건이 강화됐으나, 아이돌보미는 그렇지 않았다. 면접 5분, 교육 90시간이면 가능했다.

나는 지난 해 10월 국감에서 서울시의 이 사업이 수요자 배려 없이 설계된 ‘절름발이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아이돌보미분들 덕분에 많은 가정이 큰 도움을 받고 있고, 대다수 분들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봐주신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서비스 수요 대비 공급 부족과 제도 허점을 악용해 일부 돌보미들이 이용가정에 막무가내 식으로 금품이나 편법을 요구한 사례가 상당했고, 제재장치도 마땅치 않았다. 서울시에 대책마련을 촉구해왔으나, 결국 사달이 났다. 더 일찍 막지 못한 게 한스럽다.

정치의 본질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미리 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솝우화 중 ‘멧돼지와 여우 이야기’가 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봄날 멧돼지가 기를 쓰며 어금니를 갈고 있었다. 여우가 이를 보고 ‘당장 위험도 없는데 왜 봄을 즐기지 않느냐’ 물었다. 멧돼지의 대답은 ‘위험이 닥쳤을 땐 이미 이빨을 갈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봄날, 우리 정치권이 되새겨봄직한 자세다. / 이용호 국회의원(남원시·임실군·순창군 무소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