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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56. 고운 춘향이 살아온 듯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56. 고운 춘향이 살아온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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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0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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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호 화백의 춘향영정 매일신보 사진(1939년)과 1961년 작.
김운호 화백의 춘향영정 매일신보 사진(1939년)과 1961년 작.

1939년 5월 24일 자 <매일신보>를 살펴보면 ‘춘향이가 사러온 듯... 춘향제(春香祭)도 거행’이라는 기사 제목과 사진이 눈에 띈다. 기사 속 사진은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년)의 역작으로 알려진 춘향의 영정이다. 김은호는 논개의 영정뿐 아니라, 순종의 어진을 그린 화백으로 동학의 교주 최제우와 최시형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은호가 그린 춘향이에 관한 관심은 춘향이의 이야기와 상상을 극대화 시키며 인물화의 권위자인 김은호가 조선여성을 대표할 만 한 모습으로 그렸다고 하여 그 기대감이 남달랐다. 기사에는 호남은행과 식산은행의 은행장들의 의뢰받은 김은호가 각 방면의 의견과 고증을 참조한 뒤 조선권번기생 ‘김명애’를 모델로 하여 6개월에 걸쳐 춘향을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정은 춘향의 생일인 5월 26일(음력 4월 8일) 춘향제를 거행하고 입혼식(入魂式)을 올려 강주수가 그린 최초의 춘향 영정이 봉안되어 있던 춘향사(春香祠)에 봉안했다. 춘향이의 영정이 봉안된 춘향사는 남원유지들과 권번(券番, 일제강점기 기생조합의 명칭)의 기생들이 춘향이의 얼을 기리고자 함께 건립한 사당이다. “열녀춘향사(烈女春香祠)”란 편액을 건 춘향사는 1931년 6월 1일 광한루 중수기념식과 더불어 명창대회와 궁도대회 등을 열면서 낙성식을 거행했고, 6월 20일(음력 5월 5일, 단옷날) 춘향에게 처음으로 제사를 올리며 제1회 ‘춘향제’를 연 곳이다.
 

춘향제(1962년).
춘향제(1962년).

초기 ‘춘향제’는 이몽룡과 춘향이 처음 만난 날을 기념하여 단옷날에 열렸으나, 이때부터 더워지기 시작하고 농사로 바쁜 농번기라는 이유로 제5회 춘향제부터는 춘향이의 생일인 음력 4월 8일로 조정되었다. 일제강점기 춘향제의 시기를 조정하면서도 춘향전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1675년 음력 4월 8일생으로 태어나 16세가 되던 해 단옷날 춘향이와 이몽룡이 광한루에서 처음 만난 스토리텔링에 충실하며 정체성을 지킨 면모가 돋보인다. 1931년 시작되어 89년간 오랜 세월 속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와 더불어 풍파를 겪으며 열린 ‘춘향제’는 춘향이의 얼을 기리는 다양한 문화공연을 함께 펼치며 우리나라 지역 축제의 효시가 되었다.

1932년 <매일신보>에는 남원읍으로 승격한 전북 남원에서 춘향제가 성대히 거행되었음을 알리고 각지로부터 모인 기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권번주도로 제사를 지냈다는 기사가 실렸다. 춘향제에 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어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자 일제의 감시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원의 국악인들과 기생들은 정성껏 제를 올리며 국악을 즐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사에도 남아있듯이 춘향제는 전국 권번소속의 대표 기생들이 제사 비용을 내며 제관이 되었고, 제주는 남원 권번의 수기(首妓, 으뜸기생) 최봉선이 맡으며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제주가 되는 유일한 제사였다.

1950년 20회 춘향제부터는 남원군에서 제례를 주관하면서 그동안 춘향제의 제관을 맡았던 기생들을 대신하여 남원 지역 여고생들이 제관이 되었다. 이때부터 기존의 제례의식에 판소리와 이야기에 뿌리를 둔 춘향의 의미를 더해 명창대회와 한시 백일장을 열며 향토축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또한, 남원 처녀들을 대상으로 한정하는 ‘춘향 뽑기’대회를 열게 되면서 현실 속에서 춘향이가 살아온 듯한 광경을 보며 국악잔치를 즐기는 흥미진진한 장을 열었다. 당시 제1회 초대 미스춘향은 기생 출신으로 알려진 ‘김옥순(당시 23세)’이 선발되었고, 춘향이를 뽑는 대회는 획기적인 인기를 끌며 우리나라 미인선발대회의 원조가 된다.

춘향제기념식(1963).
춘향제기념식(1963).

그러다 6.25 전쟁 때 사당에 봉안되어 춘향이의 표준 영정으로 삼은 영정이 훼손되어 강주수가 그린 영정만을 모시고 제를 지내게 된다. 이후 1961년 김은호에 의해 다시 그려진 춘향이의 영정이 지금까지 춘향사에 봉안되어 모셔져 있다. 같은 작가에 의해 다시 그려진 춘향이의 영정을 살펴보면 비슷한 모습이나 새로 그려진 춘향이가 입은 한복 저고리는 전의 영정에 비해 무늬가 섬세하게 그려져 새 옷을 갈아입은 듯 보이며, 단심문(丹心門)을 통해 들어 와 춘향사에 모셔진 춘향이의 영정을 보러오는 사람들의 맞고 있다.

또한, ‘전국춘향선발대회’가 회를 거듭하면서 배출된 춘향이의 모습도 드라마와 영화 속에 춘향이 배역을 맡은 배우들과 이미지를 함께 형성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춘향선발대회는 오랜 역사를 지니며 연예계 등용문이 되어 많은 스타를 배출했으며 대표적인 미스춘향 출신으로는 1979년 49회 춘향 진 최란, 1988년 58회 춘향 선 박지영, 2001년 71회 춘향 진 이다해와 춘향 현인 장신영이 있다.

그중 1992년 춘향 진인 국악인이자 배우인 오정해는 “엄마의 소원으로 춘향이의 선발대회를 나가게 되었지만, 제 꿈도 이루게 되었어요. 춘향이로 선발되면서 임권택 감독의 연락을 받고는 서편제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남원은 제겐 특별한 친정 같은 곳이에요. 제 정성껏 남원을 알리며 ‘미스춘향’으로 선발된 많은 춘향이들과 <예음회>란 단체를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며 품격 있는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알리며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란 말을 전했다.
 

1947년과 1950년대 책표지의 춘향이.
1947년과 1950년대 책표지의 춘향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미인의 기준도 달라졌고 지역마다 축제는 물론이고 미인대회도 넘쳐나고 있지만, 춘향제는 춘향의 고유이야기와 지역의 공동체적 특성을 바탕으로 유구한 세월을 담아내고 있다. 이제 춘향제는 특별한 지역의 자산으로 남원만이 지닌 차별화 된 문화적 상징을 가지며, 남원 사람들이 삶 속에 체화되어 내년이면 90회를 맞게 된다.

춘향이로 인해 사랑의 도시이자 춘향골로 지칭되는 남원에서는 올해 광한루 600년을 맞아‘광한춘몽(廣寒春夢)-사랑에 빠지다’란 주제로 5월 8일부터 12일까지 다채로운 행사를 펼치며 춘향제를 연다. 해마다 춘향이의 생일을 맞이하여 춘향이가 살아온 듯 그 얼을 기리고 봄날 꿈같은 시간을 갖는 춘향제를 찾아 고운 춘향이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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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 2019-05-03 09:05:30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그 역사가 깊네요. 덕분에 춘향제의 유래와 과거 영정의 역사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유익한 기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