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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흔적, 역사가 되다] 전주 가림출판사와 한국문학의 발전
[생활의 흔적, 역사가 되다] 전주 가림출판사와 한국문학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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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0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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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가림출판사’(嘉林出版社)
 

가림출판사 지도(1962년 전주 상공 안내 시가도)
가림출판사 지도(1962년 전주 상공 안내 시가도)

목판본 출판이 사양길로 접어들고, 석판본(石版本) 출판을 거쳐, 활자 인쇄가 대중화되면서 전주에서는 1940년대부터 대양당인쇄소(大陽堂印刷所)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책을 찍어내게 된다. 그리하여 50년대에는 보광출판사(普光出版社)를 중심으로 대학교재, 시집, 교지 등이 출판되고, 60년대에는 가림출판사(嘉林出版社)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사를 이끈 ‘散文時代’(산문시대), ‘四季’(사계)와 같은 동인지들이 전주에서 발간되게 된다. 70년대에는 신아출판사를 중심으로 전국 규모의 잡지인 ‘수필과 비평’, ‘문예연구’ 등이 발간된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전주 가림출판사는 지역의 다양한 책은 물론이고, 한국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잡지를 간행하였다. 가림출판사는 당시 전주중앙초등학교(현 경기전) 동문 앞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70년대 팔달로를 개통하면서 사라지게 된다.

가림출판사에서는 강인한(姜寅翰, 1966)의 시집 ‘異常氣候’(이상기후), 신석정(辛夕汀, 1967)의 시집 ‘山의 序曲’(산의 서곡), 최승범(崔勝範, 1968)의 시집 ‘候鳥의 노래’(후조의 노래) 등을 발간하고 ‘全北文學’을 창간호부터 4집까지 발간하였다. 문학잡지, 시집 이외에도 대학 교재, 지역 역사서 등을 발간하였다.

1964년 가림출판사에서 발행한, 평론가 김현의 평론집 ‘存在와 言語’의 판권지를 보면 ‘1964년 7월 인쇄. 발행인 김종배. 발행소 가림출판사. 전주시 전동 2가 54. 등록번호. 바 5호.’와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발행인 김종배 씨에 대해 소설가 김승옥이 쓴 ‘내가 만난 하나님’에서 언급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김종배 사장이란 분은 당시 연세가 40대 중반인 키가 자그마하고 강건하게 생긴 분으로 어렸을 때부터 갖은 고생을 다하며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 비록 뚜렷한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의협심이 강하고 이상이 높았다. (중략) 최하림이 방문하여 “대학생 몇 명이 이러이러한 목적으로 문학동인지를 발간하고 싶어서” 운운하니 선뜻 “내가 당신들을 기르겠다”라고 나선 것이었다.” (김승옥, 2004:186 인용)

 

△동인지 ‘散文時代’(산문시대) 발간의 의의
 

산문시대 1호 표지. 1962년 안재은 기증
산문시대 1호 표지. 1962년 안재은 기증

‘散文時代’는 1962년 6월에 1호가 발간되었고, 10월에 2호, 1963년 6월에 3호, 10월에 4호, 1964년 9월 5호를 낸 문학동인지이다. 당시 서울대에 다니던 20대 청년 김현, 김승옥과 시인 최하림이 산문 동인회를 결성하여, 한국문학사에서 전혀 새로운 잡지가 전주의 가림출판사에서 200부 한정판으로 발간되었다.

한국 문학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散文時代’는 이후 ‘강호무, 김창웅, 김치수’(2집), ‘김성일, 염무웅’(3집), ‘곽강수, 서정인’(4집) 등 모두 10인의 동인으로 구성되어 활동하였다. 동인으로 참여한 강호무의 첫 시집 ‘棺木’(관목)이 1965년 전주 가림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동인지 ‘散文詩代’는 1964년 9월에 10인의 동인이 참여하여 5집을 발간하고 마친다. ‘散文詩代’가 비록 2년 동안 5집까지의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이 잡지는 당시의 문학계를 흔들어 놓은 대표적인 동인지로 자리매김하였고, 현재까지도 많은 문학도들에게서 회자되고 있다.

한편, 1966년 시 동인지 ‘四季’(사계)가 ‘황동규, 박이도, 정현종, 김화영, 김주연, 김현’ 등 당시 젊은 시인과 평론가가 참여하여 전주 가림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소설가들이 산문 동인지 ‘散文詩代’를 발간한 것에 호응하여, 당시 젊은 시인과 평론가들이 의기투합하여 시 동인지 ‘四季’를 발간한 것이었다.

‘四季’1호는 1966년 6월 황동규 시인이 저자 대표로, ‘四季’ 2호는 1967년 6월 박이도 시인이 발행자 대표로, 마지막 ‘四季’ 3호는 1968년 7월 20일 정현종 시인이 발행자 대표로 전주 가림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四季’ 동인지도 당시 우리 문단의 참신한 신예들로 구성되어 시에 대해 탐구를 계속했던 동인지이다.

 

△68문학
 

사계 2권 표지. 1967년 안재은 기증
사계 2권 표지. 1967년 안재은 기증

‘68문학’은 문학동인 그룹으로, 1968년 ‘散文時代’와 ‘四季’ 동인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하였다. 1969년 1월에 ‘68문학’ 제1집을 한명문화사에서 발간하고, 평론가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이 ‘문학과 지성’을 창간하고, 평론가 ‘염무웅’이 ‘창작과 비평’으로 가면서 두 개의 유파로 갈라졌다.

‘68문학’의 동인은 ‘散文時代’의 ‘김승옥, 최하림, 강호무, 김성일, 김현, 김치수, 염무웅’ 등과, ‘四季’의 김화영, 황동규, 정현종, 박이도, 김주연등이 주축이 되고, 거기에 박상륭, 박태순, 이청준, 홍성원, 이성부, 이승훈, 김병익 등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과 평론가가 참여하였다.

임영봉(2007;397)에 따르면, 이들 동인지의 발간을, 독자적인 문학을 표현하고자 하는 4.19세대들이 기성 문단의 질서를 허물어뜨리고 한국문학의 새 주체로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1962년 전주 가림출판사에서 ‘散文時代’ 잡지를 발간한 산문 동인 모임과, 1966년 전주 가림출판사에서 ‘四季’를 발간한 시 동인들이, 더 큰 동인지인 1968년 발간한 ‘68문학’으로 발전하여, 결과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잡지인 ‘문학과 지성’의 모태가 된 것이다.

전주에서 발간된 1962년 ‘散文時代’, 1966년 ‘四季’가 탄생하기까지는 당대의 젊은 소설가, 시인, 평론가들의 치열한 문학적 삶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여기에는 전주에서 출판을 하던 출판인들의 각별한 보살핌이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선배들의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여러 분야에서 새롭게 재현되길 기대한다.

이태영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 위원·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태영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 위원·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태영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 위원·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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