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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에 앞장선 유성엽 의원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에 앞장선 유성엽 의원
  • 김세희
  • 승인 2019.05.12 19:0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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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곧 하늘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동학농민혁명의 숭고한 뜻이다. 동학의 의미는 125년이 지난 시점에 참된 의미를 인정받았다. 올 2월 19일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것이다. 여기에 공을 세운 인물이 있다. 바로 민주평화당 유성엽 의원(정읍고창)이다. 그는 정읍시장 시절부터 국회의원까지 1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해 힘써왔다. 기념일 제정을 두고 지역구인 정읍과 고창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 마음고생도 많았다. 지난 9일 유 의원을 만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을 오랜 기간 애쓰셨다 들었다. 11일 정부 주도하에 첫 기념행사가 열리는 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다.

“감개가 무량하다. 지난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시행된 지 15년 만에 기념일이 제정됐다. 법적으론 동학농민혁명의 복권이 이뤄졌지만 기념일 제정을 두고 10년 넘게 지역 간 논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난해 4월 24일 종로 영풍문고 자리에 전봉준 장군의 동상이 들어섰다. 4월 24일은 전봉준 장군의 서거일이고, 영풍문고 자리는 전봉준 장군이 수감되고 사형당한 옛 전옥서 터이다. 동학이 전북도민뿐만 아니라 서울시민, 국민의 품으로도 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때마침 동학농민혁명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녹두꽃도 국민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갖는 기념식이라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촛불시민혁명이 불타올랐던 광화문 북측광장에서 기념식이 열린다는 사실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자주와 독립, 민주화를 위한 큰 원동력이었다.”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해 애쓰시게 된 계기는.

“지난 2008년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동교동에 계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뵀다. 그 때 김 전 대통령께서 ‘정읍출신인 유성엽 의원은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에 누구보다 더 앞장서야 한다’는 당부를 하셨다. 꼭 당부가 아니었더라도 동학농민혁명의 발발지인 정읍출신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한 노력이었다. 당시 ‘황토현 전승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개정안 발의까지 했다.”

 

-당시 발의한 개정안은 어떻게 됐는가.

“고창·부안에서 반대 의견이 있었고,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읍과 고창이 한 선거구로 합쳐지면서 교착상태가 됐다. 결국 처리하지 못했다.”

 

-법안이 처리되지 못할 정도라면 지역 간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경쟁은 제가 민선 3기(2002년~2006년) 정읍시장을 할 때부터 치열했다. 2004년 특별법이 제정된 후 고창은 무장기포일, 정읍은 고부봉기일이나 황토현 전승일을 기념일로 지정하자고 주장했다. 당시 이강수 고창군수와 전북도지사 셋이 만나 담판을 지으려 했으나 결론을 못 냈다.”

 

-20대 국회에서도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문제를 계속 신경 쓰셨다. 지난 2016년 국회 교육문화체육위원장을 지낼 때 문화체육관광부와 무슨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당시 문체부가 전주화약일(6월 11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하려고 했다. 담당국장을 불러서 얘기를 들어보니 ‘내부적인 절차를 끝내고 발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주화약일은 동학군이 조정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날’이라는 평가를 받아서 적절치 않았다. 보통 세계에서 기념일을 정할 때 혁명의 발발이나 발상지를 기준으로 한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문체부에 ‘다시 정읍·고창 사이에서 다시 고민을 해보자’고 거듭 설득했다.”(전주화약은 1984년 동학군이 전주를 점령한 후 조정과 맺은 조약이다. 신분체 철폐, 토지개혁 등이 담긴 폐정개혁안을 실시하고 자치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개입으로 합의는 깨졌다.)

 

-정읍·고창을 두고 고민했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다.

“오히려 더 복잡했다. 전주 화약일 기념일 지정 건은 정부와 계속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정읍시는 황토현전승일(5월 11일), 고창군은 무장기포일(4월 25일), 부안군은 백산대회일(5월 1일)을 주장했다.

 

-장소와 사건이 다양하다보니 의견을 한 데 모으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정말 고민이었다, 전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날이기 때문에 어디 하나를 고집하기 힘들었다. 지역적으로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기도 쉬운 상황이었다. 지역 간 마찰을 피하기 위해 제3의 날을 기념일로 지정하는 것도 생각했다.”

 

-제3의 날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이를 테면 전봉준 장군 서거일이다. 원광대 박맹수 교수(현 총장)께서 서거일을 기념일로 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다. 고창에서 태어나 정읍에서 활동도 하셨고, 죽음마저도 일제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선택하신 것이기 때문에 돌아가신 날을 기념일로 해보면 어떨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어색하게 느껴졌다,”

 

-제3의 날도 아니라면 어떤 결론을 내렸는가.

“정읍과 고창이 경쟁한다고 해서 피해가기만 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역사를 바르게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당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만나는 정공법을 택했다.

“도 장관에게 그 간의 과정을 다 말했다. ‘내 지역구 정읍과 고창이 무한 경쟁을 해서 기념일 지정이 보류가 돼서 염치없이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정읍과 고창을 벗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읍이든 고창이든 두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써 정치적 부담은 내가 떠 앉겠다. 장관도 지도자로서 과감히 짐을 떠 않자’고 모든 것을 말했다. 심지어 도 장관이 취임하기 전 전주화약일 지정을 제어한 사실까지도 말했다.”

 

-결국 문체부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정하기 위해 역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5인 선정위원회를 구성했다.

“당시 고창·부안·정읍·전주로부터 제안서도 받고, 공청회도 개최해서 여러 의견을 수렴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 하는 일이 특정지역으로 한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각계각층의 의견을 신중히 듣고 중재자 역할을 계속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종에는 황토현전승일(5월 11일)로 결정됐다. 어떻게 보십니까.

“1893년 사발통문을 보면 전국적인 거사의 뜻이 담겨있다. 고부봉기 이전에 작성된 ‘사발통문’을 보면 ‘전주성을 점령한 다음 경사(서울)로 진격할 사’로 나와 있다. 이 때문에 고부봉기(정읍)가 지역봉기, ‘무장기포’(고창)를 전국적인 최초 거사로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적 순서대로 보면 ‘사발통문-고부봉기-무장기포-백산기포-황토현전승’ 순으로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됐다. 인과관계로 이어져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마지막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와 앞으로 해야 할 선양사업을 설명해달라.

동학농민혁명은 독립운동, 4·19민주혁명, 5·18민주화운동, 6·10시민항쟁, 최근 일어난 촛불시민혁명의 뿌리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 만큼 전국화되고 보편화돼야 한다. 우선 정부차원에서 관련 유적지나 기록물을 전수 조사해서 국가문화재, 지방문화재 등으로 분류작업을 벌여야 한다. 나아가 국제학술심포지엄 등을 통해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성사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동학 참여자를 대상으로 독립유공자 지정 예우를 명확히 해야하고, 개헌이 무르익을 때 동학농민혁명이 헌법전문에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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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이 황토현 전승일로 지정된 이유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이 5월 11일로 제정된 이유는 이날이 125년 전 동학농민군이 황토현 일대에서 관군을 무찌르고 첫 승리를 거둔 날이기 때문이다.

이 전투에서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 동학농민군 지도부는 전라감사 김문현, 영관 이경호가 이끌고 온 영내 잡색군 1만여명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격돌해 대승했다. 영관 이경호는 농민군들에게 체포돼 전사했으며 관군 수백여명이 사상됐다.

이 날을 계기로 농민군의 혁명 열기가 크게 고양됐고, 이후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안병욱 동학농민혁명기념일 선정위원장은 지난 2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측면과 기념일로서의 상징적 측면 그리고 지역의 유적지 보존 실태와 계승을 위한 노력 등을 감안할 때 황토현전승일이 기념일로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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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스 2019-05-19 10:59:29
임진왜란때 순국하신 유공자 선정은 언제 시작될까요?

김범중 2019-05-13 19:44:47
동학혁명은 우리 민족운동사의 큰 물줄기로 반드시 역사적으로 인정받고 영원히 기억되어야할 세계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