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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김대중대통령과 전북
[김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김대중대통령과 전북
  • 최동성
  • 승인 2000.10.14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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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세월을 거치면서 뉴밀레니엄의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대중대통령.



그는 한국정치의 한복판에서 40여년동안 감옥생활과 납치,수차례에 걸쳐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며 이제 전세계의 인권과 평화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에게는 과거 험난한 파고와 국민에 대한 인고를 바탕으로 민족평화통일과 세계평화 기여를 위한 또하나의 가야할 길이 기다리고 있다.



◇정치궤적에 버팀목 역할



김대중대통령의 정치궤적에는 그의 텃밭이기도 한 전북지역의 끝없는 성원과 기대가 같이 했다. 특히 난관을 만날때마다 전북의 민심과 여론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주며 역경에 부딪치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준 변함없는 전북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70년 신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전주출신인 이철승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 후보에 올라 정치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제7대 대선은 물론 13,14,15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는 동안 전북인의 애정은 역시 따뜻했다. 민심은 대선패배와 투옥 망명,그리고 계속되는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그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몰표를 몰아주었다.
김대통령은 지난 54년6월 만 29세의 나이로 목표에서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정계에 입문했지만 그가 정식으로 정당정치에 몸담은 건 1957년. 고창출신 김성수를 정점으로 모인 민주당 신파그룹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그가 거물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지난 70년9월 신민당 대선후보 지명전.당시 신민당 원내총무로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전격적으로 대선후보 지명전 출마를 선언하고 이철승도 대열에 나섰다.
이때 당내 제1파벌의 총수였던 유진산이 물러나고,현 세종문화회관인 시민회관에서 개최된 임시전당대회에서 김대통령은 2차까지 가는 투표에서 이철승의 도움으로 김영삼 후보를 누르고 그이 나이 45세에 당당히 후보에 선출되었다.
김대통령은 지난 71년4월 열린 제7대 대선에서 공화당 박정희와 맞붙는 정치판을 만난다. 전북출신 중에는 전당대회 의장이었던 유청씨가 그의 주변에서 도왔다.
그러나 부정선거와 박정권이 조장한 지역감정등으로 박정희와 94만표 차이로 패배하였다. 전북은 여기에서 김대통령에게 유효득표수의 61.5%인 53만표를,박정희에게는 35.5%인 30만표를 던져 김대통령을 애정으로 치켜 올렸다.



 



◇전폭적 지지 반복



지난 73년 8월 일본 동경에서 발생한 김 대통령의 납치사건은 방일중이던 민주통일당 양일동당수(군산출신)를 만난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서 벌어졌다.
1980년 광주학살에 이어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 김대통령은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982년12월 2년7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이때 든든한 후원단체였던 버지니아주의 한국인권문제연구소에서 뉴저지주 경제자문관으로 활동하던 정읍출신의 유종근지사와 인연을 맺게 된다.
지난 85년1월 귀국한 김 대통령은 87년12월 제13대 대선에서는 김영삼과의 대선후보 단일화가 실패하면서 평민당을 창당,독자 출마의 길을 걷게 되었다.
13대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통령은 실의를 딛고 일어나 88년 13대 총선에서 소위 여소야대 판세를 만들어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갔다. 도민들은 당시 14개 의석 모두 평민당이 싹쓸이 하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주었다. 이같은 기류는 지난 92년3월 14대 총선에서도 반복되었다.
김대통령은 여세를 몰아 92년12월 제14대 대선에 나섰으나 지역감정의 난무와 용공조작등으로 김영삼에 1백93만표 차이로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전북이 89.2%인 99만표를 대거 보내줬으나 역부족이었다. 김대통령은 대선 다음날인 12월19일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는데,여기에는 정읍출신인 경희대 나종일교수의 힘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발전의 새로운 계기



영국에서 귀국한 김대통령은 95년6월 치러진 4대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과 호남권을 휩쓸었다.
2년7개월만에 현실정치로 돌아온 그는 95년9월 민주당과 결별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96년4월 제15대 총선에서 79석의 제1야당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DJT연대를 이룬 김대통령은 97년 12월 제15대 대선에 사실상 마지막 출사표를 던져 극적인 결과를 낚았다.
물론 그때 대선에서도 전북은 김대통령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밀어주었다.전북출신의 조세형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을 비롯 한광옥 부총재,김원기 통추대표등이 그를 도와 선거를 치른 것. 핵심 브로인으로서 임실출신의 서울대 한상진교수등 학계와 기업인,연예인등 보이지 않는 전북출신 다수가 자신의 일처럼 대통령 만들기에 맹활약을 보였다.
도민들은 “김대통령의 수상은 사회적으로는 갈등과 반목을 벗는 상생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환영하며 “이제 전북발전및 지역민심에 더욱 귀 기울여 내치에 신경쓰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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