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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먹방이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 먹방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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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1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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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해진 사회복지사
소해진 사회복지사

자기 전 하는 일이 있다. 뉴스를 읽으며 세상사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는 건 아니고, 유튜브 먹방을 본다. 이상하게 자기 전에 허기인지 헛헛함인지 모를 것들이 밀려와 먹방을 시청하곤 한다. 구독자와 조회 수가 저렇게 높은 걸 보면 나만은 아닌 것 같다. 하나같이 저 많은 걸 어떻게 질리지도 않고 먹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인데, 한 번은 나도 먹방 유튜버 처럼 계속 먹었다가 다음 날까지 끄윽 끄윽 트림을 연발하며 소화제를 달고 살았으니, 먹방 유튜버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먹방을 보고나면 유투버가 먹었던 걸 휘리릭 검색하고 결제하거나, 다음에는 꼭 저걸 먹으리라는 다짐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든다. 어느 새 복잡한 마음은 단순해진다.

‘먹방’이라는 용어는 일상적으로 쓰인다. 먹방은 ‘먹’과 방송의 ‘방’이 합쳐진 신조어다. 먹방은 미국의 유튜버 ‘The Fine Brothers’가 만든 서양 사람들의 먹방을 보고 난 뒤 리액션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은 2009년 인터넷 플랫폼 아프리카TV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한국 먹방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한국어 병음 ‘Mukbang’이 그대로 전 세계 유튜버들의 콘텐츠로 재생산되면서 고유명사화 되었다. 최근에는 시각뿐만 아니라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 감각 쾌락 반응) 이라는 음식 먹는 소리를 극대화하여 들려주는 방송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실 삼시 세끼를 맛있는 것만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맛있는 걸 만들거나 먹기 위해 정보, 돈, 에너지를 상당히 써야 하는데 어떤 날은 맛있는 것만 먹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에 지치고 신경질이 나서 ‘어떻게 만날 맛있는 것만 먹을 수가 있어!’하고 스스로를 다그친 적이 있다. 그날은 결국 밥에 물을 말아 김치와 먹었다. 왜 이렇게 맛있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을까. 먹방이 내 삶에 영향을 끼쳤을까. 아니 내 삶은 왜 먹방을 찾게 되는 걸까.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먹방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장기 경제 침체로 인한 널리 깔려있는 불안감과 불행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먹방을 보는 심리 기저에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 숨어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불신, 치열한 생존 게임과 피로로 인해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을 찾기 위해 먹방을 보는 것이다.

나 역시 세상과 나의 온도 차로 인해 불안할 때가 있다. 30대 중반에 가진 것도 직업도 변변찮고 삶도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특히 아침 신문을 펼쳐보면 1인당 3만 달러 GDP와 5G 통신으로 한국 사회는 날로 발전한다는데, 사회적 약자일수록 크고 작은 불의들이 활화산처럼 덮쳐와, 이들이 주검으로 발견되거나 삶의 터전이 황폐화되는 걸 접할 때마다 지독한 약육강식 사회가 무섭다. 그나마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안전한 관계 때문이다. 비혼 여성이라는 사회적 위치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밀도 있는 관계, 세상 속에서 실패하고 존재를 상실할 때마다 방어선이 되어준 관계. 한국이 헬조선이 아닌 헤븐조선이었다면 어땠을까? 각자의 방구석이 아닌 공원 잔디밭에 앉아 사람들과 즐겁게 하하 호호 거리면서, 맛있는 음식보다 더 맛깔난 농담과 일상의 이야기로 버무려져 있으려나?

/소해진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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